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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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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과 임금 차별,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여성들이 보다 평등하게 일하며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에 관해 한국여성민우회의 김민문정·박봉정숙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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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5년 세계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성평등 지수가 조사 대상국 145개국 중 116위였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도 OECD 28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경제는 나름대로 발전해왔는데 여전히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러한 분석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봉정숙 대표(이하 '정숙') 사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도 수십 년째 제자리인 상황이고,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0%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성의 노동 조건이 과거에 비해 전혀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세계 성차별 보고서'에 제시된 항목을 살펴보면 여성의 정치 진출도도 상당히 낮은 편이에요. 20%도 안 되는 수준이죠. 현재 대학 진학률을 비롯해 여성의 교육 수준은 남성을 앞서고 있는데 정작 사회 진출에 있어서는 장벽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임금 부문에서 이렇게 많은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 주목할 부분인데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정숙 저희도 이 부분에 대해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을 계속 해왔어요. 일단 성별에 따라 직종이 분류된다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고, 영세 기업에 근무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도 임금 격차의 원인으로 꼽히죠. 그렇다면 동일 직종의 동일한 직장에서 일할 때는 같은 임금을 받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은 곳에서 그렇지 않더군요. 예전에는 그래도 임금 테이블이라는 것이 있어 같은 직급일 경우에는 동일한 임금을 받았지만 요즘은 연봉제여서 개별로 계약서를 쓰잖아요. 개별적으로 연봉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상당히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죠.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어도 서로 연봉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날 수가 없어 더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인 거예요.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남자는 생계 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1987년에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여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직장 내 평등에 관한 각종 캠페인을 펼쳐왔는데요, 활동 초창기와 비교할 때 직장 내 여성의 입지가 긍정적으로 변화된 부분은 없나요?
정숙 초창기에는 여성 우선 해고, 임금 차별, 승진 차별 등의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불공평한 현실에 관해 계속적으로 항의와 소송을 제기하면서 그런 문제들이 조금씩 개선되고 법률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죠. 그런데 IMF를 맞으면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어요. 모두가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때도 여성이 더 큰 위기를 맞았어요. 심지어 정규직에서 해고되고 그 자리에 다시 계약직으로 들어가는 상황까지 벌어졌고요.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니 실제로는 성에 의한 차별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인 것처럼 구조화돼 그걸 성차별이라고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그래서 우선 비정규직의 보호와 복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지만 워낙 큰 물결이다 보니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공무원이나 사법 시험 등 고시를 준비하는 여성이 많아졌는데, 이 분야에는 성차별이 없기 때문에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좋은 점수를 얻으며 여성의 합격률이 높아졌죠. 그러니 '알파걸' 이야기가 나오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 일반 회사에서는 그런 우수한 여성 인력이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고시로 몰리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마치 여성들의 상황이 좋아진 것처럼 집중적으로 소개되면서 "이렇게 남성을 앞질러 성공하고 있는데 성차별이 무슨 말이냐. 여성이 힘들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세계 성차별 보고서'의 내용은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죠.

직장에서 여성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네요. 민우회에서 2015년에 진행한 <20~30대 여성들이 일하며 겪은 불안과 빡침 말하기 대회 - 어디서 말하겠어?>가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개최한 행사였죠?
김민문정 대표(이하 '문정') 그렇죠. 각기 다른 근무 환경과 상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힘든 직장 생활'에 관해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는 PT 쇼 형식의 행사였어요. 직장 생활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직장 생존 전략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죠. 한동안 여성 노동 문제가 경력 단절에 초점을 맞춰 정책 역시 경력 단절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잖아요. 그래서 2013년과 2014년에 이와 관련해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재진입'의 어려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해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선택과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니 단순히 재취업 지원 정책 등의 방향으로는 절대 여성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올해는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자는 취지로, 직장 생활의 출발점에 서 있는 다양한 직군의 여성들을 만나는 작업을 한 거죠.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현실적으로 여성 직장인들이 처한 상황을 포착할 수 있었겠군요.
문정 대부분의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수모를 겪고 있었죠. 직장 내 성희롱부터 승진 차별·임금 차별 등을 당하면서 '내가 이 노동시장에서 이렇게 발전해가겠구나'라는 상을 그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러한 역경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버텨낼 생존 전략을 짜거나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사람만 노동시장에 남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취집이라고 해서 결혼을 선택한다는 걸 깨닫게 됐죠. 정말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노동시장에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아야 경력 단절도 발생하지 않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거예요. 이제는 현실적으로 과거의 생계 부양자 구도가 깨졌잖아요. 80~90년대에는 가족 임금이라고 해서 가장 한 사람이 벌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구조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런데 여성이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은 예전과 똑같이 열악하니 선택의 여지가 너무 없는 것이 지금의 실태입니다.
정숙 사실 경력 단절 문제는 임신, 육아, 출산만 지원하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쉽게들 얘기하지만 실제로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문제보다는 성희롱과 임금 차별은 물론 여자 상사가 한 명도 없는 직장 내 현실에 실망해 계속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전망도 보이지 않고 저임금에 자신이 하는 일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도 안 되는 데다 굉장히 소모적인 거죠. 이런 상황에선 여성들이 임신하고 힘들게 버티면서 직장을 계속 다닐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임신, 출산, 육아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직장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재편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야 된다는 거죠. 많은 여성이 직장에서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문정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재하러 온 기자들조차 흥분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열띤 현장이 펼쳐졌어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 순간이었죠. 행사 이후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만 힘든가?>라는 소책자를 발간했어요. 인쇄 매체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함께 공감하고, 이 공감을 통해 여성들이 서로 연결되고, 연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대다수의 한국 직장 여성들이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여성에게 아직도 불평등한 우리 사회가 변화되기 위해서 가장 요구되는 인식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정숙 '여성도 경제적 주체다'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여성은 부가적인 존재나 남성이 없으면 대체해 쓰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여성이건 남성이건 경제활동을 할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경제적인 주체로서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성별에 따라 기회가 달리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여성은 늘 임시적인 존재로 치부돼버리는 거예요. '여성이 아니라 동료다'라는 것을 명확히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도 직장이라는 조직에 들어왔으면 열심히 자신의 역량을 펼쳐 인사 고과도 잘 받고 싶고, 승진도 하고 싶고, 임원도 되고 싶기 마련인데 평생 여직원에만 머물게 하는 구조에서 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여성을 경제적 주체로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가 재편돼야 남성도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사실 양성평등은 여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잖아요. 이런 움직임들이 결국에는 직장 내 양성평등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2016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정숙 올해는 여성들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으려고 해요. 구직 혹은 이직 등 채용 과정에서 여성들이 처하는 차별적인 구조에 주목해보려고 하죠.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중·후반 여성들의 이야기 말인가요?
정숙 네. 우선은 그 연령층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는데, 막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연령대가 넓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딱 그 시기에만 구직 활동을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워낙 이직을 많이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연령대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겠죠. 아직 구직 과정에서 지원자는 언제나 을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구직자로서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해요. 현재 우리 사회는 기업과 구직자가 너무 지나치게 갑을 관계인 상황이거든요. 특히 여성들은 연봉 계약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상하게도 굉장히 겸손해져 남자들에 비해 너무 낮은 연봉을 부르거나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구직자로서 당당히 요구하고 기본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사회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 그쪽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 활동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총선도 끝났으니까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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