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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가 되었다는 거짓말, 최악의 만우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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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 PINOCCHIO
Giorgio Majn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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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동안 본 만우절 거짓말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

- 저 사실은 게이예요.
- 저 레즈비언이에요.
-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 조만간 성전환 수술 하려고요.
- 저 실은 양성애자예요.
- 이제부터 페미니스트로 살겠습니다.

이 그대로의 워딩은 아니었지만 핵심 내용은 이랬다.

나는 어제 거짓말을 만들어 보기 위해 내 안에 있는 텅 빈 곳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곳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시시껄렁한 방법들을 고안해 내면 그 자체로 쓸 만한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그러나 마음속 텅 빈 곳들은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더 들여다보다간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거짓말거리를 찾는 이들도 있었다. 소수자가 되었다는 거짓말. 약자가 되었다는 거짓말. 물론 악의는 없었을 수도 있는 거짓말. 그러나 하나도 웃기지 않은 거짓말. 누군가에겐 비수가 되는 거짓말. 오직 만우절 하루를 즐기기 위해 지어낸 그 거짓말을 누군가는 평생 동안 입 밖에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말을 발음하듯 간단히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 텐데도 차별이 싫고 폭력이 두려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말. 한 점 부끄럼 없는 말이지만 부끄러워하라 강요하는 존재들에 치이고 살며 누군가는 언제나 가슴 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을 그 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들이 단순한 재미와 웃음을 위한, 하루가 지나면 모조리 휘발해 버릴 농담으로 소비되는 모습들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없다면 차라리 농담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