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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성들이 군대에 가길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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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군대에 가고 싶어 한다. 왜? 군복무를 마치면 지긋지긋한 2등 국민 취급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 입대를 원하는 여성들 중 대부분은 오직 군복무를 기준으로 '의무를 완수한 진짜 국민'과 '그렇지 않은 가짜 국민'을 가르는 폭력적인 기준에 진저리를 친다. 차라리 군대라도 다녀오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군대든 뭐든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특정한 행위를 마쳐야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이미 차별이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오지 않은 남성이 남성 집단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취업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군복무를 마친 남성'이 가장 정상적인 국민의 지위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여성과 남성 장애인을 비롯해 그 기준에 미달하는 존재들은 차별을 마땅히 감수하도록 강요받는다.

인터넷에서 여성 징병제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찾아보면 재미있는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여성의 절반 이상이 여성 징병을 찬성했지만 남성의 절반 이상이 여성 징병을 반대했다. 12년 전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통계다. (2005년 7월 1일자 중앙일보 기사) 통계를 보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이 55.6%인 반면 남성은 24.9%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다시 여론조사를 벌이면 다른 결과가 나올까?

남성이 75%가 여성 징병제에 찬성하지 않은 것은 군복무로 인해 얻어지는 사회적 특권을 여성에게까지 부여하고 싶지 않다거나 여성은 신체적으로 군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심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남성의 인권 혹은 역차별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요즘의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한 보상과 신체적 특성에 따른 배려를 전제로 하는 여성 징병제에 과연 진정으로 찬성하고 나설지는 대단히 불투명하다. 여성들은? 성차별에 훨씬 민감해지고 임신과 출산에 더는 얽매이지 않게 된 요즘의 한국 여성들은 군복무에 대해서도 12년 전의 여성들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다만 군대가 여성도 갈 만한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여성 징병제가 실시되지 않는 것에 대한 헌법소원에 헌법재판소 재판권 전원이 합헌 판결을 내린 것이 2014년이다. 그때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히며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을 합헌이라 판결했다. 즉 한국이 여성 징병제를 허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을 전투 인력을 재생산하는 존재, 즉 애 낳는 기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물론 성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여성의 신체는 임신과 출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헌재의 다음과 같은 의견이다. "남성 중심으로 짜인 현재의 군 조직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면 상명하복과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 범죄나 기강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이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의견이다. 게다가 전투와는 무관한 보직에 배치한다거나 승진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여성 군인을 대상으로 군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또한 여성 군인은 군대 바깥에서 사회를 통해 요구받는 '모성'이나 '돌봄'의 역할을 군대 내에서까지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여성 징병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된다. 첫째, 여성은 애 낳는 기계가 아니라고 국가 차원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모든 여성의 임무일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적인 상식으로 만들지 않는 한 국가의 녹을 먹는 고위급 공무원들이 여성의 징병을 허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여성 징병제를 반대하는 핵심 세력이 바로 헌재와 국방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둘째, 군대 내에 존재하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뿌리 뽑는 것이다. 여성이 군대에 안심하고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서는 여성 징병제는 또 다른 폭력을 재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성 군인과 마찬가지로 여성 군인도 차별 없이 실력과 노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남성과 동일한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지려 하는데 막상 돌아오는 것은 차별이라면 여성들은 결코 군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여성 징병제 실시는 군대 안팎의 가부장적 요소의 철폐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실현이 가능한 계획이다.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강요하는 것도, 군대 내 성폭력과 성차별도 근본 원인은 한국 사회에 공기처럼 만연한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군대 내 성폭력과 성차별의 근간인 가부장제는 남성 군인이 군대에서 겪는 폭력의 핵심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부장제 철폐는 여성 군인뿐 아니라 남성 군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그러나 군대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정말 여성들이 군대에 가길 바란다면 남성들은 좀 더 정교하게 여성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남성들이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 공부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과 남성의 삶 모두를 갉아 먹고 있는지를 상세히 규명하는 이론이 바로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가부장제를 여성들과 함께 조금씩 부수어 나간다면,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여성 징병제가 실시될지도 모른다. 여성도 남성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에 다녀올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