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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이 언제나 약자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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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NCE
Shutterstock / Rudchenko Lili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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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목숨 앞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인간이 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성이고 힘이 약하다. 웬만한 남자 중학생들도 마음만 먹으면 나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저 앞에서 서너 명씩 마주 걸어오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반사적으로 온몸의 감각이 바짝 곤두선다. 불안감은 남학생들이 나를 지나쳐 걸어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 본 뉴스들이 내 속에서 새로운 고민거리를 만들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어느 20대 지적장애인이 마트에서 6살 여자 아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영상을 보았다. 아이는 작대기처럼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가해자 지적장애인은 체포도 되지 않고 구속수사도 받지 않았다. '단순폭행'으로 처리된다고 했다.

또 다른 뉴스. 서울 용산구에서 무슬림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할랄 지도'를 만든다고 한다.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맞는' 혹은 '이슬람스러운'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용산구는 할랄 지도를 대량으로 제작해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방문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드 보복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자리를 무슬림들이 채워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내 머릿속의 상식은 장애인과 무슬림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내 머릿속의 상식은 장애인과 무슬림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내가 마땅히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혹시라도 그들이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그들의 생존권을 위해 마땅히 연대해야 한다고 나의 상식은 말한다. 그러나 나의 두려움은 정반대의 말을 한다. 지적장애를 가졌지만 나보다 월등한 체구와 완력을 지닌 남성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차별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갖은 고초를 겪을 무슬림들이지만 한국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에 뼛속까지 익숙해 있을 남성들과 격리되는 길을 택하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나의 두려움은 그들을 거부한다.

나는 예전에 지적장애인 남성에게 해코지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 한번은 내 일터에 날마다 찾아와 결혼하자고 졸라 대며 행패를 부리던 지적장애인이 있었고, 또 한번은 내 알바 장소에서 '음란한 행위'하던 지적장애인과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들은 분명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부당한 격리를 감내해야 하는 소수자들이자 약자들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얼마든지 완력으로 제압하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강간할 수 있는 강자들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지적장애인 남성들이 무섭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을 격리하는 방침에 물론 반대하지만 지적장애인 남성이 내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이는 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슬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슬림 남성들이 살아가는 문화권에서 여성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나는 조금 알고 있다. 그곳에선 여전히 '명예 살인'이라는 끔찍한 관습이 존재하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내의 몸을 칼로 썰어 버리거나 불에 태우는 남성들이 멀쩡히 살아간다. 여성에 대한 극도로 보수적인 '정조 관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처럼 재산처럼 상품처럼 취급하며 살아간다. 한국의 무슬림은 이 나라 특유의 인종 차별적 시선의 희생양이 되기 일쑤고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슬림 남성들이 무섭다. 머리로는 무슬림들과 함께 행복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 두려움은 그들이 내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성폭행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남성으로서의 신체적 완력과 가부장적인 권력을 앞세워 여성이나 아동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그 이상의 짓도 할 수 있다.


장애인이든 무슬림이든 한국 사회에서는 명백한 사회적 약자들이지만 그들이 언제나 약자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남성으로서의 신체적 완력과 가부장적인 권력을 앞세워 여성이나 아동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그 이상의 짓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장애인과 무슬림의 경우는 늘 약자성만 부각될 뿐 그들 중 일부 때문에 누군가는 애꿎은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은 전혀 말해지지 않는다. 오직 그들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존재들(성인 남성?)만이 그들과의 더불어 사는 삶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포장해 세상에 내세울 수 있다. 물론 육체적 완력이 약한 나는 그들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그 공간을 떠나는 길을 택할 것이다.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젠더 중립 화장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소수자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그러나 나는 남성 혹은 남성의 완력을 소유한 성소수자와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무척 두렵다. 남북의 통일? 남한 남성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북한 남성들이 남한 사회로 유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통합은 누군가에겐 장밋빛 미래이자 운동의 완성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한 내게는,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약자들에게는 통합이란 악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나는 어디에 요구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는 나 같은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는가? 나도 장애인들과 무슬림들이 한국 땅에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그들 중 일부 남성들을 향한 두려움은 다른 모든 감정들을 압도해 버린다. 한마디로 나는 죽거나 강간당하기 싫다. 그렇다고 모든 지적장애인 남성과 무슬림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범죄자들을 가려낼 수 있는 재주가 내겐 없고, 그 범죄자들이 저지르게 될 끔찍한 짓들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대체 무슨 노력을 기울이는지조차 나는 잘 모르겠다는 것뿐이다.

여성과 아동이 겪어야 하는 피해는 통합을 위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일까? 그렇다면 대체 누가 통합으로 인한 이득을 보는가? 왜 통합과 어우러짐을 위한, 다문화 사회를 위한 사회적 비용을 여성과 아동이 치러야 하는가?

나는 나의 두려움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 목숨 앞에서는 한없이 보수적인 인간이 될 뿐이다. 지적장애인 남성도, 무슬림 남성도, 그리고 책가방을 멘 채 키득거리며 지나가는 남학생들도, 나는 두렵다. 나를 위한 안전장치가 어디에도 안 보인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