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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개인정보를 노리는 '가계정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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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onosov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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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를 가장한 어느 남성의 페이스북 가계정이 요 며칠 화젯거리였다. (가계정 주인은 현직 포주고 페친이 된 여성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가 자기 업소 홍보용 사진으로 쓴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남성들에게는 화젯거리에 불과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정보 갈취를 목적으로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접근해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어느 남성의 존재는 여성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을 개인정보만으로도 성추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개인정보는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대단히 저열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한 개인에 대한 어떤 정보를 노출했을 때 그것이 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려면 그 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집단 내부에서 악의적으로 소비된 개인정보는 그 개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고 개인의 이미지를 걷잡을 수 없이 추락시킨다. 가해 집단이 소규모일 경우엔 불운인 셈 치고 잊어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규모는커녕 세상의 절반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여성의 개인정보는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대단히 저열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포토샵을 이용해 프로필사진을 정액으로 흥건한 얼굴 사진 혹은 남성의 성기를 물고 있는 사진으로 만들기도 하고, 여성의 얼굴 사진 밑에 이 여성이 왜 '걸레'인지, 지금까지 어떤 남성들과 어떤 음란한 방식으로 놀아났는지를 상세히 묘사하기도 한다. (물론 죄다 거짓이다.) 잘린 머리를 효수하듯 여성의 얼굴 사진을 게시물로 걸어놓고 댓글로 '메갈', '페미나치' 등등의 모욕적인 낙인을 찍기도 하고, 심한 경우 집 주소와 전화번호, 재학 중인 대학과 학과명까지 폭로한다. 이 모든 것들은 명백한 범죄 행위다.

문제는 여성들에겐 과연 누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유포할 남성인지 알아볼 수 있는 재주가 없다는 점이다. '일부 남성'이라고는 하지만 그 일부가 대체 누군지 겉으로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를 가장한 남성 가계정의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SNS를 사용하는 여성들, 그중에서도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규정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표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공포가 삽시간에 전염된다.


여성들에게 왜 개인정보를 SNS에 올렸느냐고 핏대를 세우기 전에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에 죄를 물어야 한다.


그럼 SNS에 개인정보를 올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의 자유를 굳이 제한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페이스북에 개인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올리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개인정보를 멋대로 훔쳐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것은 범죄다. 범죄인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따라서 여성들에게 왜 개인정보를 SNS에 올렸느냐고 핏대를 세우기 전에 먼저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에 죄를 물어야 한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그 정도 일을 겪을 각오도 하지 않았느냐는 이들 역시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체 언제부터 페미니스트의 정의가 '부당한 폭력에도 인내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 그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신념 때문에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의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지 성차별과 성폭력에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로 여성 집단이 어떤 남성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남성에게 '걸레'나 '창남'이라는 낙인을 찍을까? 왜 개인정보를 SNS에 올렸느냐고 남성을 꾸짖을까? 폭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남성이 사는 곳까지 여성들이 찾아가 테러를 가하기라도 할까? 아니다. 남성에겐 그 어떤 사회적 낙인도 찍히지 않는다. 테러는커녕 아무 일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17년이 걸린 '소라넷' 폐쇄와는 달리 두 달 만에 운영자를 검거한 '한남패치' 사건에서 이미 볼 수 있었듯, 한국 사회는 여성 집단이 남성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즉시 여성 집단을 일망타진하려 할 것이다.


여성혐오 범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피해자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피해자들의 잘못을 추궁하는 독특한 범죄다.


여성에게 개인정보 유출은 여성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사회적 살인, 혹은 인격 살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연인지 아닌지 여성의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의 구성원은 늘 남성들이다. 그렇기에 여성의 개인정보는 항상 이성애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왜곡되고 이성애의 방식으로 낙인찍힌다. 가계정을 사용해 여성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캐는 남성이 단 한 명뿐이라 해도 여성들이 모든 남성들을 향해 경계심을 품을 명분은 충분히 존재한다. 천 개의 초콜릿 중 독이 든 것이 딱 하나뿐이라면 오로지 초콜릿 한 개만큼만 의심해야 할까? 아니다. 의심해야 할 것은 천 개 모두다.

가계정 남성에게 호되게 당한 여성들은 저마다 '페이스북 친구'를 정리하고, 당분간 SNS 친구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트위터에서, 텀블러에서 여성의 얼굴에 정액을 합성한 사진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실명을 언급하며 온갖 조롱과 인신공격을 퍼붓는 남성들도 아직 건재하다. 가해자들은 아무 탈 없이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피해자들만 자꾸 안으로 움츠러들거나 숨는다. 뭔가 이상하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모든 남성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성혐오 범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피해자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피해자들의 잘못을 추궁하는 독특한 범죄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