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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주만 비난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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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vigm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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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이국주가 자신에 대한 성희롱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그 게시물이 지워진 상태지만 관련 소식을 보도한 뉴스의 댓글에는 이국주가 그동안 방송에서 저지른 '성희롱' 사건들을 나열하며 "왜 본인은 남성 연예인들 성희롱했으면서 자신이 당하니 기분 나빠 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실제로 이국주는 방송에서 남성 연예인들에게 '기습 뽀뽀'를 하거나 남성 출연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명백한 성추행성 행위를 저지른 바 있다. 그러나 이국주가 방송에서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어째서 가능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성희롱은 성희롱으로 되갚아야 한다"는 무책임한 논리만 되풀이하게 된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뚱뚱한 여성 연예인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필요한 물음은 이것이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뚱뚱한 여성 연예인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뚱뚱한 남성 연예인이 개그맨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반면 뚱뚱한 여성 연예인은 대부분 개그우먼이다. 그들은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없지만 여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신한 여성상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한마디로 뚱뚱한 개그우먼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남성의 의도에 맞게 훼손당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캐릭터를 획득한다. 그리고 훼손된 여성성의 자리에 주입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성성이다.

따라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뚱뚱한 개그우먼에게 기대하는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우악스럽고 추저분한 남성처럼 굴거나 가부장적으로 행동해야 뚱뚱한 개그우먼은 방송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강제로 주입당한 남성성 혹은 타의에 의해 투영된 남성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일종의 성적 지배를 수행하도록 요구받는다. (성적인 지배욕만큼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수행 주체가 여성일 경우 성적 지배의 대상은 대부분 이성애만을 다루는 지상파 방송에선 당연히 남성이 된다.


한국의 예능계가 뚱뚱한 여성 개그우먼에게 생존의 유일한 방법을 학습시킨 결과물이라 해야 한다.


즉 이국주의 남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성추행은 한국의 예능계가 뚱뚱한 여성 개그우먼에게 생존의 유일한 방법을 학습시킨 결과물이라 해야 한다. 이국주뿐 아니라 뚱뚱한 여성 개그우먼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로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하고 남성성을 착용한 채 자신을 남성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가장한다. 그래야 방송에 출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국주는 성추행 중독자가 아니라 단지 방송계에서 생존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국주의 그런 노력을 애초에 예능 프로그램 PD들이 원했다는 사실은 해당 장면들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는 사실로서 간단히 증명된다.

어쩌면 이국주의 행위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남성성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거울에 비춘 모습일 수도 있다. 여성성을 지니면 안 되는 여성에게 남성성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남성성의 가장 전형적인 요소를 남성 집단에서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요소가 바로 성추행이라는 사실은 거꾸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성추행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행위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시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국주의 성추행성 행위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이 오로지 이국주를 향해 퍼부어지는 상황은 매우 부당하다. 이국주를 예능 프로그램에 맞게 개조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건 PD를 비롯한 방송사 간부들이다. 간부들은 시청률과 광고 수입을 위해 시청자들의 쾌감을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하고 남성성을 가장해야 뚱뚱한 여성 연예인이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여성의 신체 혹은 여성성을 어떤 방식으로 취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