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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폭행 사건' 왜 피해 여성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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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폭행 사건'은 한국 사회가 여성 대상 범죄를 바라보는 관점, 이러한 범죄에 대한 불감증, 가해자를 지우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하는 방식 등을 정말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의 범죄 피해, 사회제도적 범죄 예방 및 대책은 지워지고 '보답을 하지 않은 여성'만 남았다.


1.

길 가다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피해 여성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는데, 그녀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성적 반응과 도의적 책임을 요구받았다. 그 순간 여성이 느꼈을 극도의 두려움과 정신적·감정적 혼란 상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에 그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여성은 즉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애당초 그 범죄 피해 여성에게 정말 도덕적 책임이 있는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 그 여성의 범죄 피해, 사회제도적 범죄 예방 및 대책은 지워지고 '보답을 하지 않은 여성'만 남았다. "가해자가 미친놈인 건 당연해서 말 안 하는 거고."라고 하는데, 제발 말해라. 이 사건의 화살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일과 시간에도 길을 가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할 수 있는 것'이 두려운데, 남성들은 '지나가다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도와 줬는데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2.

사건 보도 후 가장 많은 반응은 "여자는 어떻게 항상 도망 가냐.", "왜 도와주면 꼭 도망 가냐.", "이러니 지나갈 때 도와주면 안 돼."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사건에서 여성이 도망가서 남자가 범인으로 몰린 경우가 워낙 많아서' 화가 난다고 했다.

범죄 현장에서 여성이 도망가서 남성이 범인으로 몰린 사례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많은가? 나는 남초 사이트 말고 뉴스에서 이런 사례를 접한 적이 없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정도 남성들의 분노를 유발 했다면 그 사례가 정말 많아야겠지? 여성혐오 범죄만큼? 하루에도 무수히 일어나는 성범죄만큼? 설마 그렇게 당당하게 화냈으면서 이것도 '김치녀 괴담'과 같은 부류는 아니겠지?

범죄와 관련해서 여성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남성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상정해 놓고 발화하는 데서 정말 절벽 같은 권력의 낙차를 느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범죄에 있어서 남성들이 시혜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 '도와 줄지 말지' 고민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젠더 간 온도차다. 이 사건을 접한 후 여성들은 '일과 시간에도 길을 가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할 수 있는 것'이 두려운데, 남성들은 '지나가다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도와 줬는데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 그게 젠더 간 온도차라고. 애당초 '도움'이라는 것이 필요한 사회라는 데에 분노해야 하는데, '도움의 대가'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정말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지 않았나.


충격적이게도 아직도 피해 여성에 대한 욕설이 끊임없었다.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안 했다며.


3.

범죄 당일 언론에서는 피해 여성이 도망쳤다는 사실만 언급했고, 이에 온갖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가해자 제압을 도운 남성의 인터뷰에 따르면 범죄 당일 저녁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 사건 경위를 밝혔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그 남성은 "그 여성분도 정말 피해를 많이 입은 피해자고요. 그분에 대한 혹시나 오해나 이런 걸로 인한 비난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이쯤 되면 다들 멈출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충격적이게도 아직도 피해 여성에 대한 욕설이 끊임없었다.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안 했다며. 사건 당일 정확한 정황도 모르고 피해자를 마녀사냥 해놓고 그 여성이 언론에 얼굴을 비추며 감사 인사를 했길 원한단다. 이걸 보고 더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정말 이런 범죄에 대한 아무런 경각심이 없구나. 피해자에게는 조금의 감정 이입도 하질 못하는 구나. '여성혐오' 범죄를 부정할 일말의 여지가 필요한 것뿐이구나. '상상도 못 한 범죄를 당해 충격과 공포 속에서 생명을 가까스로 건지고 심지어 그 와중에 인터넷 상에서 무수한 욕설을 감당한 뒤에도, 이성적으로 신고하여 도움 준 남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고 찾아가서 치료비 및 감사 인사까지 전하는 피해자'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바라는 범죄 피해 여성의 모습이구나.

다시는 이런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온 국민이 힘을 쏟아도 모자란 판국인데, 이 사건의 반응 경위는 정말 참담하다. 범죄 피해를 받은 여성분과, 도움을 주고 흉기에 찔린 남성분의 빠른 쾌차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