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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도 없는 라면, 미련 남기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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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초의 요리는 투명한 봉지에 담겨 있던 '덕용'(德用)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이었다. 곤로(풍로)에 올린 양은냄비와 라면 한 개. 내 인생은 그 순간이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뭔가 내 손으로 '결정'짓는 일을 해보았으니. 망쳐도 먹어야 하고, 말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라면봉지의 '조리예'(조리한 음식의 예로 보여주는 포장지 사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느꼈다고나 할까. 그렇게 실패한 라면을 먹으면서 차츰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다. 라면 물은 최대한 센 불에 끓여야 한다, 김치를 넣을 때 수프 양 조절을 하지 않으면 다음날 얼굴이 붓는다 따위!

군대에 가서도 라면은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했다. 군대 라면은 쪄서 나오고, 그것도 일요일 아침에만 배급된다. 한번은 보급 라면이 지금은 없어진 ㅊ라면으로 바뀌었다. 그걸 두고 말들이 많았다. 그중의 압권은 '대통령 부인이 그 회사 주인'이라는 '썰'이었다. 삼양과 농심의 전통적인 회사를 밀어내고 군납을 할 정도면 뭔가 '빽'이 있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전두환 시대는 뭐든지 음모론과 결합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각하 하사품'이라고 봉황 마크가 찍힌 명절 특식을 받던 세대였으니까. 근데, 이보슈, 세금으로 산 특식에 왜 당신 이름을 박았소? 그것도 '하사'(下賜)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그렇게 먹은 라면은 인스턴트다. 라면은 원래 라(拉)면이다.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흔히 수타면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쳐서 면을 끌어당겨서 늘인다. 중국의 전통적인 제면법이다. 그 면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후 안도 모모후쿠씨에 의해 인스턴트화되었다. 일본은 인스턴트 라면의 개발국인데, 식당에서 인스턴트 면을 끓여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 온 일본인들이 제일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라면집이란 곧 인스턴트 라면을 요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가게에서 파는 라면 따로, 인스턴트 라면 따로다.

일본은 라면 천국이다. 라면 잡지도 있고, 라면집 랭킹도 매긴다. 물론 가게에서 파는 라면을 대상으로 한다. 라면도 진화한다. 국물 없는 면이 등장한다. 쓰케멘이라고 하는, 소스에 찍어 먹는 면도 있다. 마치 자루소바처럼 진하고 짠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다. 소스도 원래 고기와 뼈로 끓이는 것이었는데, 일본식의 가쓰오부시 같은 걸 섞어서도 낸다. 육식성 소스 반, 해산물 소스 반을 섞어 '더블 소스'라고 부른다. 물론 이 소스는 일반 라면에도 해당한다.

아부라소바(油そば)는 좀 특별하다. 라면의 특징이 곧 '국물'이라는 선입견을 부숴버린다. 아예 소스가 기름이다. 소스라기보다 그냥 면에 미끄러운 기름기가 붙어 있는 정도다. 김과 고기, 달걀 정도를 얹어먹기는 한다. 먹기 전에는 엄청 느끼할 것 같은데, 의외로 잘 먹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면을 학창시절에 좋아했다고 한다. 라면 자체가 일본 전래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이 라면도 몇 가지 설이 있다. 1952년에 히토쓰바시대학 옆의 한 식당에서 시작했다는 설, 또는 그 후 한 대학 앞의 중국집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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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라소바(油そば) 사진 박찬일 제공

아부라소바는 마치 이탈리아의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같다. 미끈한 면이 기름을 감고 입에 들어온다. 짠맛이 강하다. 아부라소바를 먹는 표준적인 방법은 이렇다. 우선 면에 고추기름을 두 바퀴 돌린다. 식초를 세 바퀴 더 돌린다. 갈아낸 마늘을 조금 넣고 휘휘 버무린다. 가만 보면, 짜장면 먹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위에 덮인 소스는 없다. 모양은 참 별게 없고,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먹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미련이 남는 희한한 면이다. 1997년 일본 요미우리신문 선정 올해의 히트상품에 꼽히기도 했다.(야후 재팬 참조)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라면이 국민음식이 되고, 다시 일본에서 건너온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의 국민음식이 되어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하고 요상하다.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처럼 얽힌 한·중·일 삼국지라고나 할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