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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가로막는 극단적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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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든 기업이나 학교,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든,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은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에 유혹을 느낀다. 상황 타개책을 단 한마디 어휘에 담아 단숨에 청중을 사로잡고 싶어서다. 홍보 전문가들이 스티키 메시지(sticky message, 입에 딱 달라붙는 한마디)라며 단순, 강렬한 슬로건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는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세상일에 깃든 다양한 측면을 외면하도록 하기 쉽다. 선악 구도, 이분법 구도로 비판 대상에 낙인을 찍어버리는 프레임 효과의 위험성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가 파면당했다. 그가 저지른 갖은 패악을 다시 나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통에 기여하는 말과 불통을 초래하는 말을 가려내는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즐겨 사용했던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은 반추해볼 만하다. 마침 5월4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기록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업무수첩이 공개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12월19일 새누리당 최고위원 만찬에서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엠비(이명박 정부) 때 좌파척결에 있어 한 일이 없어 나라가 비정상이다. 누리스타 같은 우파 연예인 단체들이 출연 못 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수첩에 적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2014년 2월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뿌리 뽑아 끝까지, 불독보다 진돗개같이, 한번 물면 살점 떨어질 때까지"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공식 발표는 이것보다 표현을 다소 순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첫 업무보고에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의 정신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할 것으로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그뒤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부의 으뜸 국정 슬로건이 되었다. 정부는 국무총리실에 정상화 과제 관리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했고 비정상의 정상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정부 부처별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선정 열풍이 불었다. 그 결과 정부 부처 전반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150개 과제'를 선정했다.

국어사전을 보면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 된 상태"이며 비정상은 "정상이 아님. (유의어) 변태, 이상"이다. 가령 '국회 본회의 정상화'와 같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할 기능이 한때 정지되었다가 회복될 경우에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옳다. 정책은 다르다. 정책 가운데 어떤 것은 정상이고 어떤 것은 변태라고 단정해버릴 게 얼마나 될까?

교육부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라고 △대학등록금 카드 납부제 활성화 △선행교육 근절 △논문표절 근절 등 연구윤리 강화 등을 제시했다. 대학등록금을 현금으로 내면 비정상이고 카드로 내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억지다. 선행교육에 단점이 있으니 개선할 수는 있지만 선행교육을 송두리째 변태라고 규정하여 국법으로 다스리는 게 과연 정상인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언어는 대상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눈다. 좋은 정책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이해관계자들과의 합리적인 토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나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불의라고 찍어 배제하는 나쁜 프레임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뿐만 아니다. '좌파 척결'도 세상 사람들을 좌파와 우파로 나누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쫓아내겠다는 대결적 사고에서 비롯된 말이다. 종북세력이니 좌경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부역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부역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함'이다. 박 전 대통령과 추종자들의 패악이 심했지만, 그렇다고 국가 반역으로까지 볼 일은 아니지 않나. 더구나 부역이란 말은 한국전쟁 시기 뼈아픈 이념 갈등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도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패악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합리적인 절차를 되레 방해할 수 있다.

극단적인 언어는 대개 선과 악, 이분법 구도를 사용한다. 나만이 옳고 상대방은 송두리째 불의라고 찍어서 배제해버리는 논법이다. 상대방에 대한 극한적인 증오, 대결 의식과 결합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면 무엇보다 공공 사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봉쇄되는 게 문제다. 상대방이,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이 공론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정치 현장이나 기업, 학교, 사회단체를 가릴 것 없이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진실에 뿌리 박아야 할 새 시대의 정치언어'(김명환, 계간지 말과 글, 2017년 봄호), '정치적 올바름과 정치권의 언어 왜곡'(이근형 , 2016년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발표회) 등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