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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신화' 걷어차기, 우리는 반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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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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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어떤 전략으로 임했나요?"(기자)
"전략 없어요. 올림픽이 축제잖아요. 그냥 즐겼어요."(펜싱 에페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장면 2
"한국 금메달 10개 어렵다."(뉴스 보도)
"에어컨도 못 켜는데 메달이 뭐 중요한가."(한 누리꾼 댓글)


#장면 3
8월15일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레슬링 경기장. 16강전에서 김현우의 기술 점수가 2점으로 판정받고 비디오 판독으로도 번복되지 않자, 안한봉 감독이 코트로 올라가 무릎 꿇고 울며 판정이 잘못됐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고 안 감독은 퇴장당했다.


리우올림픽의 세 장면은 상징적이다. 메달 지상주의를 위해 검투사처럼 양성돼왔던 선수들은 '반란'을 시작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일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누리꾼의 목소리에는 당장의 삶이 중요하다는 시선이 보인다. 반면 한국 체육의 지도(자)급 인사의 수준은 여전히 보수적인 과거에 얽매여 있다.

22일(한국시각) 폐회식을 끝으로 보름여간의 열전을 마감한 2016 리우올림픽은 한국 선수들의 당당한 자기 선언의 첫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극적인 역전을 이뤄 금맥을 캔 재기 발랄한 박상영뿐만 아니다. 태권도의 이대훈은 8강전 패배 뒤 상대 선수의 손을 번쩍 들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메달은 몇날 몇달이면 잊힌다. 내 삶의 경험으로 삼겠다"는 발언은 혁명적이다.

리우올림픽 선수단 205명은 대한민국 2015년 초·중·고·실업 등록선수 14만336명의 0.15%다.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어야 태극마크를 단다. 이들 가운데 기득권층 진입 면허인 리우올림픽 메달리스트는 21명(금 9, 은 3, 동 9)이다. 메달을 딴다고 생계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축구나 골프 등에서 거액 연봉이 보장된 선수들과 달리, 생활고에 자살을 생각한 메달리스트도 있다.

아예 대표팀 근처에도 못 가고 선발 과정에 탈락한 대다수의 운동선수 출신은 학교나 클럽의 비정규직 코치로 200만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다. 2017년 도시 4인 가족 중위소득 447만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빈곤선에 있다. 그렇다고 운동 기능인으로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극소수 메달리스트가 나올 때마다 국위 선양이라며 단물만 쪽 빼먹은 정부가 선수 생활 뒤 인생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박상영과 이대훈, "올림픽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손연재가 등장한 이유다.

한국 스포츠와 올림픽 메달은 기괴한 관계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직업적 경력의 결실'도 아니다. 좋아해서 하는 선수도 있지만 대개는 정부, 그 가운데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기획에서 만들어진다. 경기력 하나에만 예산과 인력을 쏟으니, 선수들의 인권이나 복지, 은퇴 뒤 대책은 안중에 없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는 "정책 당국의 생각이 '양성한다'에서 '지원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을 기계처럼 하나의 종목에 올인하게 만들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일반 학생들도 취미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의식에도 변화는 있다. 생활체육 참가 폭이 넓어지면서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졌다. 직접 해보니까 선수들의 어려움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강신욱 단국대 교수(체육교육)는 "국력, 통합, 화합 등 허접한 얘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선수들이 잘하면 고맙고, 열심히 뛰어주는 것에 감사한다. 보는 이의 시선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올림픽에 무관심해 자기 일에 몰두하거나, 거꾸로 관심 종목은 중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방송사이트를 찾는 팬들도 있다.

선수나 팬과 달리 체육정책과 행정의 지도자들의 사고는 한계를 노출했다. 안한봉 감독 사건은 경기인 출신의 과도한 열정이 돌출한 상황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 사건에서 보듯 국제 스포츠법정에서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국내 룰을 고집한 대한체육회 상층부의 무개념은 심각한 문제다. 해방 이후 올림픽 메달을 정치 수단으로 삼은 역대 정부가 이제 생활체육만이 길이라며 경기인 단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도, 유권자의 표를 따라 움직이는 정치의 표변이다. 체육 백년대계가 탁상에서 결정될 때 후유증은 크다.

체육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미국식 스포츠를 한국에 이식하기는 힘들다. 지독한 입시 경쟁은 체육 학원을 양산할 것이다. 반면 전문 선수에 대한 지원 확대로 리우올림픽 육상 남자 계주 400m 은메달을 일군 일본의 사례를 기존의 엘리트 스포츠로의 회귀로 봐서는 안 된다. 강신욱 교수는 "일본의 의도는 생활체육의 확대를 위해서도 엘리트 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극단적 경쟁에 몰려 있다. 박노자는 각자도생의 살길을 찾는 사회의 특징을 "비굴함"과 "잔인성"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체육행정은 선수들의 희생을 당연시한 둘의 변주로 이어져왔다. 선수층과 인프라를 확대하는 지난한 과제를 고민하는 대신, 손쉽게 44살의 선수를 끌어다가 핸드볼 문지기로 세우는 게 2016년 한국 체육행정의 현주소다. 류태호 교수는 "체육계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젊은 선수들의 발랄함은 정부나 체육계, 학계 등 기득권층의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