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채윤 Headshot

누가 내 표를 죽이는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1
뉴스1
인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기자 간담회에서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다음 선거에 하셔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의당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를 이용하는 졸렬한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선거 때면 꼭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사표'다. 흥미로운 건 다른 논쟁은 자신과 가장 반대편에 선 후보와 해도 사표, 즉 '죽은 표' 논쟁은 가장 자신과 가까운 입장의 후보와 벌인다는 점이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그 표는 언제 죽은 것일까? 애당초 살아 있던 표는 왜 죽는 것일까? 표를 죽인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자의 표는 선거 전날까지 살아 있다가 1위에 포함되지 못하면 모두 투표함에서 죽는 것일까? 사표를 방지하자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어두운 미래를 제시한다. 당신이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해서 표가 죽었고, 그 표를 죽인 죄로 잘못된 정권의 고통스런 통치를 받게 된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표를 죽이고 살릴지를 결정하는 것은 애당초 유권자의 몫이 아니다. 표가 죽는 것은 오히려 표에 담긴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평가되지도 않을 때이다.

국민들은 누가 1등을 할지 맞히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표는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다득표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발생한다. 당선만 되면 유권자들의 꿈과 희망을 쉽게 무시하는 정치 환경 때문에 발생한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부정의한 협잡과 그 틈에 배불리려는 사리사욕 때문에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죽는 건 한 장의 표가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사람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0.6%의 차이로 석패하자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은 노회찬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안철수, 심상정, 이정희 등이 모두 문재인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후보 단일화를 했지만, 오히려 역사상 최초로 50%가 넘는 득표율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리고 박근혜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오류를 바로잡는 국민의 힘을 믿는 것이 민주주의다. 선거는 권력을 승인해주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평가하는 장치여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던 어느 목사는 "독재가 더 위험한가, 빨갱이가 더 위험한가. 친일이 더 위험한가, 빨갱이가 더 위험한가"를 설교 시간에 외쳤다. 해방 이후 한국의 모든 선거를 지배했던 논리다. 빨갱이 혐오의 자리를 이제 동성애 혐오가 대신하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확실한 후보'라는 구호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국회 의석수를 가진 당에서 선택한 선거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는 후보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종교와 정치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애를 쓴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종교와 정치의 차이도 있다. 종교는 사후 세계까지 보장을 하지만 정치에는 사후 세계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가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고, 정치가 '나중에'와 '다음에'를 외치는 것은 헛된 약속이다.

사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지자들 간의 갈등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다른 후보에게 책임을 물을 준비를 이미 하고 있다. 사표를 방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선거구제,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 유권자의 한 표에 담긴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선거제도를 논의할 수 있다. 사표 방지 심리를 통해 압도적 득표율을 얻어내면 후보자와 열성 지지자들에게 심리적 만족감은 주겠지만, 임기 내 지지율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국민들의 83%가 백지 투표로 정부에 항의하는 어느 도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부는 당황해서 "희망은 소금 같은 거야. 영양분은 안 들어 있지만, 그래도 빵에 맛을 내주거든"이라는 유권자의 소박한 말조차 음모로 보고 연행해서 취조한다.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는 선거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선거엔 사표가 없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