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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교사할당제 주장, 왜 수십년째 계속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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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xxxxj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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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뉴스를 뒤적거리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1979년 8월에 중앙교육연구원이 '여교사 대책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너무 많은 여교사로 인해 남학생들의 기질이 여성화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교사 증가를 둔화시키는 정책으로 교육대학에서는 남학생의 합격 하한선을 낮추어서 더 뽑고, 교육청에서 중등 교사를 신규 채용할 때 남교사를 의도적으로 더 뽑아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가 나온 1979년 당시 초·중등 여교사의 비율은 29.4%였다. 무려 70%의 남교사가 있음에도 불안했던 것이다. 보고서는 1955년 이후로 23년 동안 남자 교사는 2.5배 늘어났는데 여자 교사는 무려 8배나 늘었다며 이런 추세를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위기'를 강조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임용고시가 따로 없었다. 1963년에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국공립 사범대의 학생들은 등록금을 면제받았고 졸업만 하면 임용이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교육대와 사범대의 남학생 비율은 낮았다. 1960년대 말부터 군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남자들에겐 교직보다 더 매력적인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원인은 여자들이 학교로 몰려와서 남자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교직을 애당초 선택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럼에도 1983년에 문화교육부는 이 보고서의 제안처럼 남학생을 일정 비율로 뽑는 '교육대학교 신입생 선발 제한 모집 제도'를 발표한다. 이 제도는 지금도 최소 25~40%씩 남학생 입학할당제로 이어지고 있다. 정책을 실시한 결과는 '실패'였다. 그것도 대실패. 1983년에 전체 초등교사 중 여교사 비율은 39.9%였고, 2016년에는 77%로 올랐으니 말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남학생 입학 할당제에 이어 임용 시 남성교사할당제까지 실시하자는 주장은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반복되고 있다. 올해 초에도 한바탕 논쟁이 있지 않았는가. 대체 무엇 때문일까.

1979년의 보고서에서 여교사가 많아지면 남학생들이 여성화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국토양단의 남북 대치에다 통일 등 국가적으로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돼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2세의 기질이 여성화되어 가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 조언하거나 "가정의 어머니, 유치원 여교사, 초등학교 여교사 등 여성의 세계에서만 어린이들이 자라나게 하는 결손을 남성과의 접촉 유도로 균형 잡아 주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분명 교육적 차원을 강조하지만, 되짚어보면 언급되는 2세와 어린이는 모두 남자를 기본값으로 한다. 어린 소년들은 성인 남자가 가르쳐야 진정한 남자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교사들의 대부분이 남성이었을 때 아무도 소녀들이 여자답지 못하게 자랄 것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된다. 성역할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은 아니다. 성별 정체성은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바뀌지 않는다. 교사의 성별에 집착하는 동안 오히려 우리는 교육의 질을 놓치게 된다.

이런 어리석은 논쟁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몇 년 전 남학생이 기간제 여교사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남성교사할당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남교사 부재로 인한 학교 폭력이 심화되는 사례로 삼았다. 여기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남녀 성차의 문제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작년에 기간제 남교사가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자 분석이 달라졌다. 그제야 언론에서도 기간제 교사의 취약한 위치를 근본적 문제로 보도했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그리고 여교사이든 남교사이든 교권 침해와 학생 체벌은 학교 내 폭력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접근해야 한다. 젠더 이슈가 아닌 것을 너무 쉽게 젠더 문제로 만들어버리면 해결책은 오히려 찾기 힘들어진다. 비단 교육 영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대통령의 공무집행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소위 진보 쪽은 대통령의 성별을 조롱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고, 보수 쪽은 대통령의 성별을 무기로 악용하는 장면만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한숨이 나오는 건 매한가지다. 이래서야 정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이 쉬이 올 거 같진 않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