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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은 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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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H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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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에서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숙명적 라이벌인 김영삼과 김대중을 둘러싼 어른들의 하마평이었다. 김영삼은 집안이 부자여서 대통령이 되어도 부정축재를 하지 않겠지만 김대중은 반대의 위험이 있으니 뽑으면 안된다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하지만, 1992년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은 나라 곳간을 거덜내고, 소통령으로 불리던 둘째 아들은 비리로 구속되었다. 뒤를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역시 구속되었다. 각 대통령의 성장 배경은 달랐을지 몰라도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대통령이란 점은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의 대통령들은 아들 대신 형들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탓인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친인척 비리는 없을 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혈연만이 부패의 원인이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다. 지금 온 국민의 충격은 예상에 어긋나서가 아니다. 일부 측근들이 특권 속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이 측근에게 국가 권력을 거의 넘겨주다시피 했다는 것을, 또 수없이 많은 공무원과 정치인, 기업들이 그동안 조용히 이 과정에 동조하고 있었음을 마침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현직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네 번째 하야가 될지, 최초의 탄핵이 될지 혹은 퇴진 선언 후 과도 내각으로 조기 대선 실시가 될지 정도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도 계속 받는다. 이 엄중한 상황에서 왜 대통령의 '성별'이 도드라져 문제로 거론될까. 그 전의 대통령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성별'로 문제를 삼은 기억은 없다. 대통령의 비리를 캐기 위해 목숨을 건 탐사 보도도 마다하지 않던 언론들은 여성 혐오 앞에서는 쉽게 경솔해진다. 미국 대선 전에 트럼프가 "여성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을 보라"는 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SNS에 돌았고 몇몇 대형 언론사들은 이를 인용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마저 이를 언급했다가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하는 공지를 기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이 해프닝의 시작은 어느 블로거가 재미삼아 만들어서 올린 한 장의 '짤방'이었으나, 모두가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실어 나른 것이다. 경솔함은 언론만이 아니다. 학자들은 여성 혐오 앞에서 지성을 내려놓는다. 몇 해 전 모 철학자가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면서 설악산을 돈 몇 푼에 쉽게 사는 매춘부로 만들 것이냐, 쉽게 오르지 못하는 도도한 여신으로 만들 것이냐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등산을 장엄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수행을 닦는 과정이라고 점잖게 설명하더니 결국 창녀와 성녀로 여성을 나누는 해묵은 여성 혐오에 기댄 은유로 끝낸 것이다. 며칠 전에 한겨레에 실린 어느 교수의 기고문도 이와 비슷했다. 민주공화국을 지키자는 글을 쓰면서 '청결한 음부'라는 개념을 꺼냈다. 권력을 가진 국가 기관은 여성의 음부처럼 건강하고 깨끗해야 하는데 지금은 썩었으니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어 프랑스혁명 때 애국 시민들이 '공화정은 어머니'라고 외쳤다며 어머니와 자녀들을 위해 민주공화국을 똑바로 세우자고 역설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성별을 의식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민주공화국은 '자유로운 개인'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 공적 이익은 각 개인의 이익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들의 존엄성과 평등이 개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대화와 토론, 배려와 합의된 규칙을 필요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는 그 개인을 '가족'이라는 틀 안으로 넣어서 국민을 가족 단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정말 이대로 트럼프의 통치가 시작되는구나라는, 박근혜의 통치는 과연 끝날 것인가하는 한탄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장 기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은 자녀로 은유될 수 없다. 대통령이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며, 공화정이 어머니인 것도 아니다. 국가는 가정의 확장판이 아니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시국을 개탄하는 목소리를 내준 용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변호사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여자 대통령을 공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