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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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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엔 매달 『PAPER』라는 잡지를 사서 읽는 게 내 삶의 낙이었다. 워낙 이런저런 것을 다루는 잡지여서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웠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스스로 '페이퍼프로덕션에서 발행하는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교양 월간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PAPER는 멋진 사람과 근사한 가게, 신기하고 귀여운 물건을 보여줬다. 그런 건 거의 다 서울에 있었다. 나는 그 잡지를 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동경하고 또 동경했다. 부모님이 바라던 부산대를 거부하고 인서울 대학에 간 이유의 90%는 PAPER 때문이었다.

PAPER에 자주 나왔던 홍차 전문점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홍차라는 건 머그컵에 티백으로나 마실 수 있었던 지방 도시에 살던 나는 서울에 가면 기필코 그 가게의 홍차와 스콘을 맛 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20살이 되어 그 가게에 갔을 때 나는 너무 큰 실망을 느꼈다. 테이블의 식탁보는 때가 묻어있었고 점원은 불친절했다. 홍차도 그리 맛있지 않았다. 나는 우습게도 그깟 일에 상처를 받아 며칠을 앓았다.

서울에 오고 싶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모님과 싸우고 여기까지 왔는데 서울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서울 밖은 더더욱 별로라는 거다. 어떤 서울 토박이들은 이사나 전근으로 서울을 뜨게 되면 마치 벼랑 끝에서 등을 떠밀린 것처럼 슬퍼했다. 서울은 서울이기 때문이다.

seoul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그리고 경기도 지역을 합쳐서 '수도권'이라고 한다. 수도권은 남한의 약 12% 면적인데 인구의 50%가 살고 있다. 행정 수도를 옮기겠다는 대통령이 몇이나 있었지만 결국 여전히 모두가 서울에 살기를 원했다. 나는 그게 다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몰려있는 27개의 도서관과 63개의 박물관, 그리고 국립극장이라든가 연극 소극장이 지방에는 없다. 씨네큐브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하는 독립영화는 지방 사람에게 딴 세상 이야기다. 아직 영화관 하나 없는 도시가 그렇게나 많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포켓몬고로 지방 도시가 관심을 받는 것에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속초 시장이 오박사 코스프레를 하고 가게들이 앞다투어 포켓몬고 특수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이만큼 그동안 지방이 굶주려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서 지방 축제가 열린다. 쌀이나 채소 농사를 지어봤자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매실을 50킬로 따서 공판장에 팔면 3,000원이 나온다. 그래서 어떤 지방은 1년에 며칠 열리는 축제에 한 해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다. 하지만 한국은 알다시피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부족하다. 포켓몬고가 인기를 얻으니 어느 대기업에서 비슷한 것을 만들겠다 했다는데 말 다 한 것 아닌가. 포켓몬고는 포켓몬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의 지방 축제는 보통 한 번 온 관광객이 다시 오지 않는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마약보다 나쁘다는 기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중장년층이 지방 축제의 방향을 결정한다. 문화의 불모지에서 자란 이들이 어떻게 멋진 문화를 만들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국내 여행을 권하고 지방 도시가 어떻게 관광객을 유치할 것인가 백날 머리를 짜낸들 포켓몬고 한 방이 지역 경제를 살려놓는다. 결국 이건 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울은 서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