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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Headshot

지금 당장 예쁜 그릇을 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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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신기한 것을 봤어!'라고 했다. 남편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서류를 보고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다가 7시에 퇴근하는 일본의 상사맨이기 때문에 그가 신기한 걸 봤다고 말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대학생 남녀를 봤어. 풋풋할 때라 내 대학 생활도 생각나고 해서 우연히 오래 보고 있는데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관심이 있는지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어. 그러니까 여자애가 어떻게 대답했게?'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아니야.'
'집안이 정해준 사람?'
'아니야.'
'그럼 뭔데?'
'평범한 사람, 정말 평범한 사람.'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정서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2011년 일본 내각부가 20~30대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혼자의 63.7%가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답할 만큼 원래 일본 청년들은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이른바 '지진혼(震災婚)'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한국에서도 꽤 매니아를 모은 '최고의 이혼'도 지진혼을 다루고 있는데, 결혼에 적극적이지 않던 미혼남녀들이 대지진을 계기로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결혼이라는 관계 형성으로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동시에 행복하지 않은 결혼 관계를 청산하는 '지진이혼'도 늘었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진을 겪으면서 일본은 히키코모리, 고독사로 대변되던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삶의 유한성, 일상의 소중함, 가족적 가치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 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이 좋다.'는 말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평범한 사람'은 키 175센티 이상, 학부는 서성한 이상, 10대 대기업 직원, 연봉 4000만 원 이상, 개인 자산 1억 5천 이상의 30대 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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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CK UP

아무튼 이번에도 구마모토 지진 후, 깨진 접시와 찻잔을 평소 쓰고 싶었던 가장 예쁜 걸로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기약이 없는 미래보다 당장의 현실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늘 말하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런 것 아닐까.

위를 향해 끝없이 올라가며 살 것인가 아래를 보고 만족하며 살 것인가는 인생의 영원한 과제 중의 하나다. 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행복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걸 보고 있으니 마냥 잘 됐다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