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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를 추모하며 | 아직도 판금조치된 '즐거운 사라'를 해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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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는 지금도 판금조치 중이라고 알고 있다.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추도하는 의미에서 〈즐거운 사라〉 판금 해제 운동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다.

①혼외정사 ②간통 ③이혼자에 대한 관용적인 사회태도 ④성매매 합법화 ⑤동성애 이슈는 모두 결혼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관념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보적' 여성단체로 분류되는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까지도 간통죄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간통죄는 재미있는 이슈인데, 간통죄로 인한 피해자 숫자는 언제나 남녀가 동수이다. 왜냐하면, 간통한 남자와 간통한 여자가 함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통죄의 본질은 여성 보호제도가 아니라, 부녀자 보호제도이다. 결혼제도를 보호하는 것은 사실 이념적 진보/보수의 문제보다 훨씬 더 사회질서의 근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돌이켜보면, 80년대 학생운동은 '냉전 구조에 대한 반체제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문화적으로는 전통적 가족제도와 가부장제의 자장(磁場)안에 있는 세력이었다. 그리고 실은 8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전통적 가족제도의 자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급진주의 노선이 대중화(大衆化)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화(大衆化)란 언제나 그 사회 다수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속류적 속성과 타협하며 공존하는 노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NL/PD로 상징되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세력이 '정치-외교안보 차원의 반체제 세력'이었다면, 마광수 교수는 기존의 결혼제도에서 파생된 성 관념의 가식과 위선에 도전했던 '사회문화적 반체제 세력'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진보 역시도 사회문화적, 전통 가족제도, 전통 결혼제도의 토대 위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 진보의 주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강한 집단주의적 전통을 잇는 '민족주의 + 사회주의'였다. 한국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국가주의가 부족한 사회가 아니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부족한 사회이다. 마광수 교수는 한국사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착각했던 셈이다.

①혼외정사 ②간통 ③이혼자에 대한 관용적인 사회태도 ④성매매 합법화 ⑤동성애 이슈는 모두 성을 매개로 하는, 결혼제도 바깥의 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 사회가 이들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이데올로기적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 제도는 일부일처제, 결혼제도의 해체 속도와 맞물려, ①번부터 ⇒ ⑤번의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금지주의적 관념에서 관용적 관념으로 바뀔 것이다. (*참고로, 일부일처제 개념의 핵심은 '평생'을 기준으로 한다. '평생'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일부일처제이다. 이혼 및 재혼의 활성화는 역사적으로 대우혼[對偶婚]의 특징이다. )

숙명여대 법학전문대학원 홍성수 교수님이 소개해준 '즐거운 사라'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 일부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이 통탄할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님을 여실히 입증하는 판결문이다.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 학교 정문 앞에서 '두발단속'을 하던 선도부장이 읊을 만한 내용을 대법원 판결문으로 작성했다.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의 판매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으면 한다. 누가 서명운동이라도 주도해주면 어떨까 싶다.

아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대법원이 어떻게 말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즐거운 사라'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때린 대법원의 판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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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5.6.16. 선고 94도2413 판결

"(..) 이 사건 소설 "즐거운 사라"는 미대생인 여주인공 "사라"가 성에 대한 학습요구의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벌이는 자유분방하고 괴벽스러운 섹스행각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성희의 대상도 미술학원 선생, 처음 만난 유흥가 손님, 여중 동창생 및 그의 기둥서방, 친구의 약혼자, 동료 대학생 및 대학교수 등으로 여러 유형의 남녀를 포괄하고 있고, 그 성애의 장면도 자학적인 자위행위에서부터 동성연애, 그룹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카섹스, 비디오섹스 등 아주 다양하며, 그 묘사방법도 매우 적나라하고 장황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또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위 소설은 위와 같이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밖에 인정되지 아니하는바, 위와 같은 여러 점을 종합하여 고찰하여 볼 때 이 사건 소설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