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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는 '밥이 되는 민주주의'를 할 때만 극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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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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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겨레신문은 '굿바이, 박정희'를 기획기사로 다루고 있다. 한겨레 기사 [우리안의 박정희들-대구이데올로기의 탄생]은 보수-중도보수-중도진보-진보성향 대구 토박이 40대 네 명의 대담이다.

진보 쪽의 적지 않은 분들이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인해 '박정희 신화' 혹은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파탄났거나,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한겨레의 기획기사도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보여진다.

한겨레 기획기사에서 내가 받는 느낌은 박정희의 공과(功過) 중에서도 과(過)를 중심으로 박정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국민들 일부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것은 실재(實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먼저 '박정희 신화'라는 표현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신화-이데올로기라는 말에는 '허구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국민들 일부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것은 실재(實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박정희식 경제성장'에 관한 업적이다. 그런데, 사실 박정희식 경제성장에 관한 '업적'이라는 말도 박정희에 대한 국민들 일부의 존경심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가난, 산업화, 북한과의 체제경쟁, 경제성장 문제를 대하는 '박정희의 자세와 태도'가 국민들 일부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달간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을 다루는 책들을 보고 있다. 당시 참모들의 회고록도 보고 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를 분석하는 경제학 쪽의 논문들도 보고 있다.

인상적인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월간 경제동향 보고회의'와 '수출진흥 확대회의'이다. 전자(前者)의 경우 경제기획원이 주관했고, 후자(後者)의 경우 상공부가 주관했다. 이 두 가지 회의는 박정희가 '직접 주최한' 회의였다. 1965년부터 1979년까지 매월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진행했다. (햇수로 15년, 각각 약 200번을 개최한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박정희는 '한국경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의 야당 정치인 중에서 '박정희만큼' 경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 있을까.


현존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하여, 한국의 야당 정치인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 정도를 제외하고, '박정희만큼' 경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경제에 관심을 가졌던 '절반' 혹은 '절반의 절반' 혹은 '절반의 절반의 절반' 정도의 관심을 가진 정치인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1964년 '한일협정 체결' 과정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일협정 체결은 미국이 강하게 압력을 넣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소련-중국-북한의 군사동맹에 맞서기 위해 미국-일본-한국의 군사동맹을 만들어야 했다. 군사동맹을 맺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했다.

국내적으로 '친일파'를 지지기반으로 했던 이승만은, 국내적으로 친일파와 손을 잡았던 이유로 인해서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수교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반면, 박정희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리한 이슈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한일 협정을 체결한다.

'운동권 초기'에 내가 봤던 책들은 당시 국민들이 한일협정 체결을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래서 6.3사태 등의 양상은 어땠는지 등이다. 그런데, 한일협정 체결에 관해 그동안 내가 미처 접해보지 않았던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경제성장-경제발전'과의 관계였다.

포항제철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한일협정 과정에서 받은 돈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1970년대 본격화된 중화학공업은 '일본으로부터의 원자재 수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 자체가 ①미국을 통한 외자도입 ②일본을 통한 원자재 수입 ③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부품에 대한 지속적인 '국산화' 과정(=소위 수입대체) ④국내 가공-조립 산업 ⑤미국 수출 ⑥1번~5번까지의 과정을 통한, 경제규모 확대와 고용확대의 반복 과정이었다.


박정희를 뛰어넘는 것은 박정희의 과(過)를 적극 홍보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 국민들이 체험한 한국현대사는 '밥이 되는 독재'와 '밥 안되는 민주주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는 한국전쟁과 산업화가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고, 한국의 진보는 광주학살과 87년 6월 항쟁을 가장 강렬한 체험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박정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진보는 정말 박정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물론,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한국의 진보가 박정희를 뛰어넘는 경우는 박정희의 과(過)를 적극 홍보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공(功)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비전, 자세와 태도, 성취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은 언제나 양면을 갖고 있다. 상대방의 '가장 쎈' 측면과 '가장 약한' 측면이 있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다.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이 있다.


국민들의 일부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이유는 박정희가 '독재자'인지 모르기 때문은 아니다.


국민들의 일부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이유는 박정희가 '독재자'인지 모르기 때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왜? 가장 쎈 측면, 긍정적 측면, 잘한 측면이 나머지를 상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정희를 뛰어넘는 것은 '언론'이 할 수 있는 미션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정치(가)'가 수행해야 할 미션이다. '밥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열정적이되, 좋은 자세와 태도를 갖춘, 결단과 리더십을 통해, 비전과 성취를 이뤄낸 정치적 리더가 탄생할 때, 그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개혁-야당 정치인들은 아직 '박정희'에게 배울 게 더 많이 남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박정희를 제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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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36주기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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