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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이중구조'는 '자본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 정진석 원내대표 연설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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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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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다. 내용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노동시장 이중구조> 관련, <대기업노조 양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중향평준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진석 원내대표가 제기한 '중향평준화'의 취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가 많다. 그러나, 정진석 원내대표의 주장은 <진리의 절반>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나머지 진리의 절반>은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해, 두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첫째, <노동의 이중구조>는 <자본의 이중구조>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실제로 <재벌-대기업-공공부문> 중심이며, 이들이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의 이중구조>가 만들어진 핵심 이유 중에는 재벌-대기업-공공부문이 과도하게 비대화된 <(독과점적인) 자본의 이중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간 노동운동과 야권 등의 <진보쪽 편향>은 조직노동 10%가 사실은 '소득상위 10%'라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에 있다. (*혹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정진석 원내대표의 연설을 포함해서 <보수쪽 편향>은 노동의 이중구조가 '자본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연봉 1억 받는, 상위 10%의 조직노동>은 비판하면서, <연봉 100억 받는, 상위 0.1%인 재벌자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다.

► 둘째, 첫번째와 이어지는 이야기가 되는데 <연봉 1억 받는, 소득상위 10%>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근거로 양보론을 주장하려면, 그것과 동일한 원칙이 <연봉 100억 받는, 소득 상위 0.1%>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연봉 1억원을 포함하되, 연봉 100억원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일부에서 '대기업노조 책임론-좌파 기득권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기득권에 의해서 소득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나는 그 분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그러나, '원인'과 '현상'을 혼동하고, '원인'과 '결과'를 뒤죽박죽 뒤섞어 혼동하면 안된다.

분명한 진실은, <노동의 이중구조>는 <자본의 이중구조>의 '파생물'이다. 물론, 조직노동이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닐지언정) <자본의 이중구조>라는 작동범위 내에서 그에 안주하며 경제적 실리를 극대화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화의 '확대'에 기여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본의 이중구조>(=독과점적 재벌체제)에 대해 침묵하면서, <노동의 이중구조>(=재벌노조)에 대해서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비난하는 것은, 마치 '군부독재'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지 않았던 '어용지식인'만 비난하는 것과 진배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양극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일자리 양극화, 소득 양극화, 임금 양극화, 4대 보험 등 복지양극화와 모두 연동된 개념이며,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정말로 해소하려 한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자본의 이중구조>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간 진보 쪽은 '재벌자본'의 탓만 지적했고, 이제 보수 쪽은 정확하게 거울이 되어 '재벌노조'의 탓만 지적한다. 둘 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각자 정치적 이익관계에 따라서 <진리의 절반씩만> 주장하는 꼴이다. 의도적으로 진리의 절반씩만 주장한다면, 그 절반의 진리마저도 수긍되기 어려울 것이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연봉1억 받는 + 상위10% + 대기업노조를 포함하되, 반드시 연봉100억 받는 + 상위 0.1%의 + 재벌총수부터.. >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기업노조에 있는 분들도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