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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 인터뷰] '터널'의 김성훈 감독,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영화였으면 했다. 우리가 제일 못하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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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에 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매우 많습니다.

'터널'을 보는 동안 잠시 딴생각을 했다. '내 차 트렁크에는 내가 무엇을 넣어놓았더라?' 야구공 몇 개와 글러브, 배드민턴 채를 세어보면서 걱정스러운 한편, 몇 년 전 출장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두꺼운 담요와 또 왜 넣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 낫과 망치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행히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조금은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국 관객들에게 '재난 영화'는 더 이상 쉽게 섭취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인재(人災)에 대한 잠재적인 두려움이 실제적인 불안으로 드러난 이후, '재난 영화'는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며 보아야 하는 장르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관객은 재난에 고통받는 사람들,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 또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의 표정에서 2년 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난보다 더 지옥 같은 상황이 재난 밖에, 그리고 재난 이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터널붕괴사고로 매몰된 사람을 그리는 '터널'에 대해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두컴컴한 잔해 속에 홀로 갇힌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과정을 봐야 하는 건, 그만큼 겁이 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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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시작해 '끝까지 간다'를 거쳐 '터널'에 이른 김성훈 감독은 아이러니한 유머와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연민'의 감정으로 재난에 처한 사람의 고군분투를 그려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목격했던 정부와 구조 시스템의 무능, 정치인과 언론의 이기적인 행태 등은 '터널'에서도 당시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풍경으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터널 속 그 사람의 표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사방이 철근과 콘크리트로 막힌 공간에서 당신은 어떻게 버틸 것인가,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당신은 다른 이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관객들을 주인공의 딜레마에 함께 빠뜨리고,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동시에 결국 한 사람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이 얼마나 큰 위안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2014년 4월 16일의 사건을 더 집요하게 강조하는 영화가 있다면, '터널'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도 그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영화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해도 여전히 이 영화를 보는 감정에는 여전히 '미안함'이 남아있다. '터널'의 낙관적인 리듬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떠오르는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하게 보아도 되는 것일까. 내 차 트렁크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걱정해도 되는 것일까?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에게는 그보다 더 많은 고민과 딜레마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재난'을 바라보는 '터널'의 낙관적인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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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카르노 영화제'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그곳 관객들은 '터널'을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다. 재난 상황을 바라보는 입장이 한국 관객과는 다를 것 같았다. 
 
= 나도 그 점이 궁금했다. '터널'이 가진 유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더라. 그런데 그들에게도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이 보편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한국보다는 인재(人災)성격의 재난이 적었을 것 같은데도, '정치인'의 모습 같은 건 비슷하다고 하더라. 우리는 아직 아픔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한국 관객보다 외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더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더 많이 웃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 영화를 본 후에 소재원 작가의 원작소설을 읽어봤다. 원작은 여러 부분에서 영화와 다른데, 특히 결말이 다르다. 아예 모든 게 무너지는 결론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터널'과 같은 분위기의 영화가 나온 게 신기했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 진지하게 제의를 받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후배가 형이 관심 있을 것 같다며 책을 주었고, 돌아다니가가 카페에 읽어보았다. 남들 보기에 창피할 정도로 울고 욕을 하면서 읽었다. 원작의 이야기가 현실일 수도 있고, 과장된 걸 수도 있고, 선동적인 걸 수도 있는데, 너무 끔찍하고, 너무 아프지 않나. 나는 이걸 영화화시키지 못하겠더라. 내가 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에 동의하지만 일단 내가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그래도 그냥 내치기에는 아쉬운 게 있었던 것 같다. 아내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했었다. 아내도 나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래도 '할 만한 거리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도 원작을 다시 검토했고 몇 가지 톤 앤 매너를 바꿔보자는 쪽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 어떤 고민이었나.
 
= 두 가지였다. 원작은 터널 밖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영화는 터널 내부의 이야기를 주로 가져간다는 거였다. 터널 내부에서도 상황적인 아이러니로 인한 유머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그 생각을 하다가 나온 게 '강아지'와 '환풍기'였던 거다. 그리고 엔딩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엔딩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더라.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뭔가 찜찜한 해피엔딩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감독으로서는 후자 쪽을 의도하고 연출했다. 극 중의 정수와 세현은 아마도 당분간은 정말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구성한 엔딩이었다. 
 
-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가장 울컥했던 부분은 세현이 택시기사와 기사의 아내와 나누는 대화였다. 읽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도 그 부분을 넣으려 했을 것 같은데.  

= 그 부분이 좀 어마어마하다.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다 그 대목을 이야기했다. 시나리오상에서도 처음에는 썼던 부분이다.  쇼박스에서도 택시에서 라디오 방송국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문학과 영상은 역시 다르더라. 막상 시나리오로 써놓고 보니, 오글거리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오글거림을 극복할 만한 무언가를 내가 못 만들어냈다. 

- '터널'의 붕괴사고는 부실공사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나온 것처럼 그에 대한 단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이 영화에는 악한 인물이 한 명도 나오지 않다. 인재(人災)를 다루는 영화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했을 것 같다. 
 
= 직접적이고 전형적인 악당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설정이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쁜 정치인을 그려 넣는다면, 그 사람 때문에 이런 재난이 일어난 거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재난이 사람 한 두명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닌데 말이다. 영화 속 장관이 악당이었다면, 그 장관을 하나 걷어낸다고 좋은 세상이 오는 건 아니지 않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을 염두하면서 악인을 넣지 말자고 했던 거였다. 영화 속에서 동의서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나, 정치인이나 시민들이나 공감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그런 상황에 익숙하고 그래서 무뎌진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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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이 많은 흥행을 하고 있지만, 아쉬움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터널'이 가진 다소 낙관적인 태도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거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한국 관객들은 재난에 대한 사회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 나도 그런 글을 봤다.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의견이 있더라.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런 재난에 분노하는 사람만 보고 마는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랬다. 어떤 영화는 사회적인 악을 묘사하면서 시스템에 분노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긁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아픔에 공감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했다. 우리가 가장 못하고 있는 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에 대한 부족이 아닐까 싶었다. 
 
- 남지현이 연기한 미나라는 캐릭터가 그런 의도에 부합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어떤 인물로 설정할 것인가를 높고 고민했을 것같다. 

= 30대 여성이나 남성으로도 생각해봤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본 뉴스가 취업 준비생의 스트레스에 관한 것이었다. 내 또래는 취업 스트레스가 그리 크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서 취업이 정말 엄청나게 큰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나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통과했는데, 말도 안되는 곳에 갇혀버린 거다. 좁은 터널을 통과했는데, 정말 터널에 갇히게 된 상황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통해서 정수에게 딜레마를 주고 싶었다. 만약 정수가 자신보다 힘도 세고 가진게 많은 사람을 만났다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미나는 그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이다. 그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나눌 수 있을까? 이런 딜레마를 잠깐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해보면 어떤 분들은 어떻게 저 물을 나눠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 너무 착한 게 아니냐고, 그래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질문을 던졌다. 미나가 죽을 때 미안하지 않았냐고. 그러면 다들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시더라. 정수를 통해서 그런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가진 걸 나눠주어야 할 때 머뭇거리는 것도, 그러면서도 나눠주는 게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그 어린 친구가 죽었을 때 사람이라면 그 순간에는 모두 미안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배우 정석용이 연기하는 최반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있었다. 죽음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라는 질문 아니라 죽음의 방식에 대한 의문이다. 해프닝 같은 죽음이라고 해야할까? '터널'의 영화적인 톤과 다르게 '데스티네이션' 같은 영화의 죽음처럼 보였다. 
 
= 최반장이 죽는 상황은 느닷없이 벌어졌으면 했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보니까 죽어있는 상황이었으면 했는데, '데스티네이션'같은 느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최반장의 죽음이 필요했던 이유가 더 컸다. 세현(배두나)가 구조 작업 중지에 동의를 한다면, 어떤 이유로 동의할까 생각했다. 나라면 내 가족이 갇혀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돈이 많이 든다고 이야기하거나, 사람들이 불편 한다거나, 피곤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천억이 큰 돈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에 그런 액수가 들어올까? 하지만 세현이 자신보다 더 약자인 인물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싶더라. 죽은 최반장의 어린 딸과 그의 노모와 마주한다면, 물론 세현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때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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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재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점을 묘사할 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댓글창의 풍경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느낌을 위해 충분히 넣을 수 있는 풍경일텐데 말이다. 일부러 배제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 중에 하나였다. 역시 앞서 말한대로 온라인의 세계를 묘사하면 직접적이고 선동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전체적인 여론의 모습이나 정치적인 싸움에 지쳐가는 모습들을 대면할 때 불편함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더 공격적인 발언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공감이 저해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 직접적이고 선동적인 묘사를 하는 대신 '터널'은 정치인이나 언론, 경제 논리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묘사할 때마다 유머를 가미했다. 마지막 정수의 한 마디가 드러나는 장면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론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구조 장비로서 드론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언론사의 드론들이 그 뒤를 따라갈 줄은 몰랐다. 
 
= 처음에는 한 대만 들어가는 걸로 설정했었다. 사람보다는 일단 장비가 먼저 들어가지 않겠나 싶었던 거다. 그리고 그 장비가 작동이 안될 때, 대경(오달수)이 직접 들어가게 되면서 관객이 이 인물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걸 버전 업을 시키면서 과연 뒤에 쭉 서 있는 기자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상상한 거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아깝지 않을까 싶었다. 언론의 과잉취재 상황을 웃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대경이 지나가면서 바닥에 떨어진 드론을 밟고 가는 장면도 찍기는 했었다. 마치 일부러 밟은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기는 했는데 리듬감이 떨어져서 편집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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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이야기했듯이 '터널'은 터널 밖의 세계보다 터널 내부의 세계가 더 밀도있게 묘사되는 이야기다. 빛은 거의 없고 비좁은 공간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 힘은 개 '탱이'와 하정우가 연기한 이정수의 캐릭터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정수의 성격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인 조기 축구 유니폼의 '거미손'이 눈에 띄었다. 어떤 계기에서 나온 작명이었나. 
 
= 조기축구를 한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잘 활용되지는 않는다. 트렁크에는 축구공이 있고, 그 축구공을 베게로도 쓴다. 그리고 탱이가 거기에 오줌도 싼다. 사실 그 축구공이 '윌슨' 브랜드다.(웃음) 나름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한 건데, 직접적으로 보여주면 시선이 거기에만 가게 될 것 같더라. '거미손'은 한국에 귀화했던 축구선수인 '신의손'에서 생각했던 거였다. 정수라는 인물을 개구진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신의손'이라는 축구선수가 있으니, 그럼 나는 '거미손'으로 할 거야, 이런 생각으로 자신의 닉네임을 만들었을 법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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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의 연기를 보면 애써서 정수의 그런 성격을 드러내려 한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거의 1인극이나 다름없는 설정에서 배우에게 특별히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 정우씨와는 여행도 같이 가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 컷씩 나눠서 찍으면 더 쉬울 수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나 정우씨가 원하는 거나 계속 연기를 하게끔 하는 게 중요했다. 카메라를 돌리고 20분 동안 혼자 연기한 장면도 있었다.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낸 후, 냄새를 맡고, 옷을 입고, 시트를 닦는 장면들이 거기에서 나온 거다. 몇가지 설정외의 모습들은 연기를 하다보면 나올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나는 소리를 듣고 자동차 밖으로 나오는 장면도 덕분에 좋은 디테일이 살아났다. 리허설 없이 정우씨가 자동차 안의 좁은 공간을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서 연기를 한 거다. 자신은 차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안되서 머리를 더 숙이고 몸을 비트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 거였다. "이제 집에 왔다"라는 대사도 그런 상황에서 나온 애드리브였다. 

- 영화 속 터널 세트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붕괴된 터널 내부가 계속 나오는 만큼, 이 영화에서 가장 사실적인 부분이어야 했을 것 같다.

= 그게 가장 중요했다.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는 '질감'일 거다. 질감이 가짜처럼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정수에게는 이 터널이 상대배우나 다름없다. 배우와 공간이 서로 리액션을 주고받아야 하는 거다. 세트 장에서는 진짜 콘크리트 부분과 가짜인 부분을 섞어서 사용했다. 배우에게 가까운 쪽에는 가짜를 만들어 넣었고, 멀리있는 쪽에는 진짜를 넣었다. 가짜도 내부 소재만 콘크리트가 아닐 뿐, 시멘트로 마감을 한 돌이었다. 분진가루로는 미숫가루, 숯가루, 옥가루를 다 써봤다. 영화 내내 뿌연 먼지가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시멘트 가루는 배우가 흡입할 경우 위험할 수 있어서 그랬다.
 
- 이정수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라디오 방송이다. 왜 '클래식' 방송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 조금 못된 마음일 수도 있는데, 이정수에게 재미있는 걸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대중친화적인 문화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 유일하게 '클래식'을 허용하는 설정을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컬투쇼'가 나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정수는 라디오만 듣느라 다른 행동을 해볼 생각이 없었을 거다. 
 
- 그 라디오 방송의 DJ는 가요를 한 곡 방송하겠다면서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려준다. 원곡과는 다르게 편곡된 버전인데, 감독이 이 노래를 꼭 쓰고 싶었던 것 같았다. 
 
= 나는 마음속으로 정해놓았지만, 후반작업할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안했던 설정이었다. 아무래도 음악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거북이'는 내가 매우 좋아했던 그룹이었다. '비행기'란 노래는 과거에 들었을때부터 슬픈 느낌이 많았다. 영화에는 신나는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쓸쓸해지는 음악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원곡을 음악감독님이 편곡을 했고, 다른 가수가 대신 불러준 곡을 넣은 것이다. 

 - 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끝까지 간다'에서도 개가 매우 중요한 캐릭터다. 

= 좋아한다. 지금은 아닌데, 결혼 전에는 시추를 한 마리 키운적이 있었다. 
 
- 'DVD 프라임'의 게시판에서는 '끝까지 간다'의 차량번호와 '터널'의 차량번호가 같다는 걸 포착한 관객이 있었다. 

= 예전에 내가 타던 차량 번호다. 폐차한 차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도 안쓰는 번호이니, 영화에 넣은 거다. 영화 속에서 특정번호를 마음대로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다음 영화에서도 같은 번호를 쓸 것 같다.
 
- '터널'을 보는 동안 내 자동차 트렁크에는 어떤 물건이 있는지 머릿속으로 세어보았다.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트렁크를 열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예전에는 트렁크가 정말 지저분했는데, 요즘에는 세차를 자주하면서 깨끗해졌다. 깨끗한 트렁크를 보면서 이러다 큰일나겠구나 싶더라. 잡동사니도 좀 많이 넣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영화 속 정수라면 아이들이 먹다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도 정말 감사하지 않았을까? 그런 걸 보면 좀 지저분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만약 본인이 터널에 갇힌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 같나. 

= 처음에는 정말 두려웠을 거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구조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시나리오를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거기서 시나리오를 한 편 쓰고 나오면 구조된 후에 사람들이 그 시나리오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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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하 '애정결핍') 이후 7년 만에 '끝까지 간다'를 만들었고, 바로 '터널'로 이어졌다. 데뷔작과 이후의 두 작품은 성격상 매우 다른 영화다. 그 7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 별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웃음) '애정결핍'이 비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외면받았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부정했다.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걸까, 이런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나는 그 영화를 정말 잘 만든 줄 알았고,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서 영화를 다시봤는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잘 찍고 못 찍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저 상황과 감정을 모르는 데 찍었구나, 모르는데 아는 척 하고 싶었구나 싶더라. 깜짝 놀랐다. 돌이켜보니 나는 웃기지 않은데, 관객들은 웃을 거다라고 생각한 장면도 있었다. 위악적이었던 거다. 그때부터 그럼 나는 뭘 알고 있는 건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끝까지간다'는 그 과정 중에 있던 영화였다. 상황적인 재미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보려했던 거고, 그러면서 느닷없는 상황에 떨어진 인물을 묘사하는 게 나에게는 정말 재밌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 다음 작품도 그런 설정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일까? 

= 아직 정해놓은 게 없다. '끝까지간다'가 개봉했을때도 내가 다음 작품으로 '터널'을 하게 될 줄 몰랐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나에게 다음 작품의 원천은 지금 작품에서 느낀 '갈증'인 것 같다. '끝까지 간다'가 매우 미세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이야기였는데, '터널'에 와서는 그게 확장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지금은 내가 어떤 갈증이 있는지 모른다.(웃음) 영화가 이제 막 개봉했으니 흥분되고 긴장되는 상태다. 아마도 또 다른 갈증을 느끼게 될 것 같고, 다음 작품은 '끝까지 간다'와 '터널'의 중간지점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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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rd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