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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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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 형과 나, 형의 딸, 그렇게 네 명. 3대가 함께 여러 번 여행했다. 3대가 가면 2대가 갈 때보다 잘 안 다투고 사이도 좋다. 어머니는 요양보호 대상 4등급에 시각장애 5등급이다. 앞이 잘 안 보이고 부축해도 걷는 속도가 늦다. 처음으로 휠체어를 준비했는데, 이게 택시 트렁크에 들어갈지 불안했다. 출발 당일 택시를 불러서 보니 엘피지 가스통 때문에 트렁크가 좁았다. 휠체어를 겨우 넣고 다른 짐들은 안고 탔다. 내릴 때 휠체어가 잘 안 빠져서 택시 운전사가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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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구나.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히고 가니까 티켓 발권부터 출국심사까지 모든 게 빨랐다. 어머니는 '너희들 때문에 호강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어머니 때문에 줄 서는 시간이 최소 15분은 단축됐다. 휠체어 밀기도 쉬웠다. 인천공항은 '배리어 프리'가 잘돼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적재적소에 있어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비행기 문 바로 앞에서 항공사 직원들이 휠체어를 받아 화물칸에 실었다. 비행기 좌석도 앞에서 둘째 줄이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매일 뉴스와 신문을 보면서도 나는 참 건성으로 주변 일을 대한다. 관심 가는 것만 눈에 띄는 모양이다. 장애인 주차 표지를 받고도 그랬다. 이거 차에 붙이고, 어머니가 안 탔을 때도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워? 남산1호터널을 통행료 내지 않고 지나가봐? 그런 생각을 (생각만) 했는데 얼마 전 뉴스에 장애인 탑승 없이 장애인 주차 표지만 붙이고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운 차들을 집중 단속하고, 주운 장애인 주차 표지에 차량번호를 고쳐 쓰고 사용한 이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단다. 장애인 주차 표지를 받지 않았다면 이런 기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다.

일본 간사이공항도 좋았지만 인천공항만큼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별도의 리프트를 달아야 하는 구간이 있었고, 어떤 엘리베이터는 휠체어 두 대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인천공항보다 7년 먼저 지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선 큰 어려움 없이 휠체어 여행을 했다. 교토의 덴류지(천룡사), 에이칸도(영관당) 같은 유적지에선 직원이 직접 와 휠체어 길을 알려줬다.

지난 6월 일본 한 섬의 공항에서 하반신 장애인에게 두 팔로 계단을 올라 비행기에 탑승하게 한 일이 보도돼 일본 전역이 떠들썩했다. 당사자인 기지마 히데토는 1993년부터 휠체어를 타고 세계 160개국을 여행하며 책도 여러 권 썼다. 그의 블로그 '트래블 포 올'에 실린, 그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다녀온 1994년 한국 여행기의 제목은 '최악의 경험'이다. 부산엔 육교와 지하도만 있고 건널목은 없고, 지하철 개찰구는 좁아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고, 장애인 시설이 없는 경주역에서 5분 만에 내리느라 생고생하고, 서울의 택시는 승차를 거부하고.... 미국에선 일본의 나쁜 점만 보였는데 한국에선 일본의 좋은 점만 보였다고 했다. 2006년, 2007년 방문 뒤 한국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다가, 마침내 2010년에 16년 걸려 간신히 '화해'했고 앞으로 한-일 장애인 관광의 발전에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택시를 타려니 운전사가 휠체어 싣기를 꺼렸다. 뒤 택시의 운전사는 흔쾌히 트렁크를 열었고 트렁크가 매우 넓었다. 허가를 받아 스페어타이어를 빼고 그 자리로 가스통을 옮겨 트렁크를 넓혔단다. 그 운전사 덕에 좋은 기분을 그대로 품은 채 가족여행을 마쳤다. 어디가 더 좋으냐보다 어디든 좋아지고 있느냐가 중요할 거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