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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시 동료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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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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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이었다. 권투선수 홍수환의 세계 챔피언 쟁탈전이었을 거다. 관중석의 텔레비전 중계석과 카메라 사이로 꼬마 아이들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댔다. 카메라가 잠시 다른 곳을 비췄다가 돌아오니 차인태 아나운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잔뜩 쓰며 허리를 최대한 뻗어 꼬마들에게 꿀밤을 먹이려고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입 모양이 '이눔의 시키, 이눔의 시키' 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실수로 잡힌 그 텔레비전 화면이 내게 70년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축구, 권투에 온 사회가 난리를 떨던 시절.... 맞다. 아나운서가 차인태이니까 그 채널이 엠비시였다.

시절을 대변하는 것 같은 장면이 또 있다. 1988년 저녁 뉴스에서 강성구 앵커가 멘트를 하는데 웬 남자가 옆에 와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말하다가 바로 끌려나갔다. 이 남자는 그 뒤에도 몇 번 더 지상파 텔레비전 화면 안으로 '난입'해 같은 말을 했다. 막 지나간, 끔찍했던 5공화국이 아직 안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 그 사람이 잘 지내는지 가끔 궁금했다. 그 채널도 엠비시였다.

엠비시의 방영물들을 지난 시절의 이정표로 삼는 이들이 많을 거다. 나도 그중 하나다. 마침 최근 개봉한 영화 <공범자들>을 보고 새삼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군 복무 중이던 1980년대 중반 내무반에서 본 엠비시 단막극 <베스트셀러 극장>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사회의 어둡고 예민한 구석을 들췄다. 제대하고 뭘 할지 막막하던 그때 "저런 드라마 만들고 살면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 하며 엠비시 드라마 피디를 꿈꾸기도 했다.

2005년 황우석 사태는 여론이 이성을 잃을 때 얼마나 끔찍한 흉기가 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신문도 여론의 눈치만 보던 그때 황 박사의 성과에 조작 가능성을 들이대고 나선 엠비시의 모습은 당시 신문사 부장이었던 내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엠비시가 아니었다면 그 뒤로 한국이 얼마나 창피한 일을 겪었을까. 그러고 보면 이 방송사 사람들은 자기 집단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월급이나 대우가 좋아서라기보다, 사회가 바라는 일을 잘 해내는 곳에 있다는 데서 오는 직업적, 윤리적 자신감 같은 게 보였다.

2010년, 반백수로 지내던 내게 엠비시 선후배 기자들이 찾아왔다. 시사프로그램 '2580'을 이끌어온 이들이었다. 엠비시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같이 일하자고 했다. 그들과 반년 가까이 함께 일하면서 많이 친해졌는데, 얼마 뒤 엠비시 사장이 바뀌고 퇴진 요구 시위와 보복 인사가 있고 나서 보니 모두가 기자 아닌 다른 직으로 발령이 나 일산, 용인, 성남 등지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들으면 화가 나겠지만 나는 내심 반가웠다. '나는 제대로 된 인간들과 어울릴 팔자를 타고났구나.'

그 뒤로도 그들과 가끔 만나 엠비시에서 벌어진 코미디 같은 얘기들을 하고 들으며 웃다가 헤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럴 일이 아님을 서로 알고 있을 거다. 뻔뻔한 사람들. 뻔뻔하게 되풀이되는 상황.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선명하다.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 소리 하는 아랫사람 자르고, 사장이 갈리면 비슷한 사람이 또 나와 아부하고 자르고..., 영화의 어디를 잘라 어디에 갖다 붙여도 붙을 것 같다. 그 동어반복의 상황이 부끄럽고 지쳐서 조용히 있었던 거지, 엠비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닐 거다. 마침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제작 거부에 나섰단다. 곧 응원 갈 거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