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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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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라는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바로 가서 봤다. 전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재미있게 읽어서였다. 이 책엔 시인 네루다와 동시대 예술가, 혁명가의 기인스럽고 역설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중 하나,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군에 맞서 싸운 한 공군 장군이 밤마다 정찰비행을 했는데 프랑코군의 대공포를 피하기 위해 불을 끄고 비행했다. 그게 오래가니까 지루한 나머지 점자를 배워, 저 아래에서 치솟는 불길과 전쟁의 비명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비행 중에 점자책을 읽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마치고 〈삼총사〉 읽는데 프랑코군이 이겨서 망명했단다. '혁명이나 투쟁은 짜릿하고 역동적이기보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것일 수 있구나. 그러니 항심을 갖고, 격정적인 순간에도 디테일을 살피고....' 이건 내 해석이었고, 막상 네루다는 사실만 전할 뿐 이렇다 할 자기 해석을 붙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어법에 호기심과 낙천성, 자유분방함이 넘쳐났다.

영화 〈네루다〉도 어법이 신선했다. 네루다가 2차 대전 직후 칠레 파쇼정권을 피해 망명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그를 쫓는 형사가 주인공이다. 형사의 눈에 비친 네루다는 공산주의자를 자처하지만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에 가깝다. 형사의 시선을 벗어나 네루다를 비출 때도 그는 충동적이고 유아적이기도 하다.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이 겹쳐지면서 캐릭터에 무게감이 쌓인다. 형사가 네루다 지지자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설원에서 허망하게 죽어갈 때, 그의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도 묘했다.

전기 영화를 만드는 건 힘든 일 같다. 체면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역도산〉을 제작한 차승재는 "원래 시나리오에서 삐죽삐죽하던 역도산의 캐릭터가 (유족과 지인들을 만나면서) 둥글둥글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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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무현입니다〉를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영화가 노무현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방식이 단순했다. 내 안에서 "왜?" "어떻게?"를 묻는 긴장감이 안 생겼다. 인물이 새롭거나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대목이 드물었고, 감정이 격해질 법한 시점에서 음악을 까는 게 부담스러웠다. 재해석과 탐구보다 설득과 선동에 초점을 맞춘 듯했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긴장이 생겼을 거다.

2002년 말, 대선 후보이던 노무현을 인터뷰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로 〈라이언의 딸〉을 꼽았다. "평범한 한 여인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또 권태를 느끼자 영국군 주둔군을 사랑하고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겪게 되고 반역자로 몰리는 내용인데... 영화 보면서 제가 도덕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그 여성의 처지에 대해서 깊은, 아주 깊은 공감을 하는 거예요. ... 남편을 배반했으니 부도덕한 사랑이고, 주둔군을 사랑했으니 공동체에 대한 배반이고. 도덕적 규범과 충돌하는 한 인간의 감성이랄까 이런 게 어쩐지 강하게 남아 있는 거죠." 대통령 후보로서 모범답안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모여 한 사람의 매력을 만들 거다.

노무현이 〈노무현입니다〉를 봤다면 좋아할까? 치열하게 산 사람일수록, 자기에 대한 칭찬을 경계할 거다. 흔한 말로 칭찬하면 싸늘하게 내치는 모습을, 그 또래 민주화운동 했던 선배들에게서 자주 봤다. 독재에 저항한 실재 인물들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신파적 선동보다 입체적이고 아이러니하기까지 한 디테일을 풍성하게 담으면 좋겠다. 그게 그 실재 인물들이 원했던 세상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