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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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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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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봤다. 한쪽 눈에 백내장 수술을 한 뒤 처음 본 영화였다. 달라진 시력에 적응이 안 돼 큰 화면을 보는 동안 멀미감이 밀려왔다. 당연히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뿌듯한 고양감이 생겼다. 기적이 내 곁에서 막 벌어진 것 같은 느낌. 그게 오래간다. 이 영화가 뭘 한 거지? 한 번 더 봤다.

영화는 미국 여객기가 2009년 1월 사고를 당해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는데 155명 승객 전원이 무사히 구조된 실화를 다뤘다. 그러면 관객에겐 크든 작든 마구 감동해도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을 거다. 영화는 초반부터 거기에 급제동을 건다. 승객들을 구해낸 기장 설리를 두고 사회가 영웅으로 추대하기 바쁜 와중에 항공사고 조사위원회는 뜻밖의 의문을 제기한다. 공항으로 갔더라도 충분히 착륙할 수 있었는데 기장 설리가 무모한 모험심, 혹은 경박한 영웅심 때문에 강물 위에 불시착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영웅이 오해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그런 외양을 띠지만 설리 스스로 자기 선택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진다. 공항으로 갈 거냐, 강에 불시착할 거냐. 짧은 선택의 순간에 자신이 뭘 생각했는지, 옳은 판단을 했는지 어떻게 확신할까. 설리는 과거에 고장 난 전투기에서 탈출하지 않고 착륙시켰던 기억을 떠올린다. 내 안에 무모함이 있나? 누구나 찾아내면 나올 거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 알량한 영웅심 때문에 일을 이상하게 한 기억들. 자기를 추인해야 할 과제를 스스로 떠안는 설리는 선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의 선함. 보통사람의 선함뿐 아니라 보통사람의 상식, 어수룩함까지 톰 행크스는 이 분야 연기의 1인자 같다.

관객은 어쩔 수 없다. 감동하거나 흥분하기에 앞서 이모저모 살피고 숙고할 수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구조되는 과정이 재현된다.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 극적인 구출의 카타르시스? 그런 건 미안하고 조심스럽다. 감정의 분출이 유보된다. 신중하게 본다. 담담하게 조그만 것들이 보인다. 매뉴얼을 따라 구호를 외치는 승무원들. 줄서서 차분히 대피하는 승객들. 구조하러 오는 배에 탄 선원들의 표정, 헬리콥터에 뛰어내리는 다이버. 영웅적인 건 없다. 하고 있는 일, 으레 해야 할 일들이다.

조사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설리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이 입증된다. 이제 관객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감동할 준비를 하고 봐도 된다. 다시 한 번 사고 당시 조종석 안의 상황이 재현된다. 하지만 영웅적인 것, 새로운 것은 없다. 조종간을 돌리고, 스위치를 켜고, 레버를 당기고.... 감흥은 익숙한 것들 속에서 일어난다. 평범한 손동작 하나하나가 경이롭다. 기적의 인간화라고 할까. 영화는 기적에 붙어 있는 성스러움, 신비함, 숭고함 따위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사람이 보이게 한다. 그래 놓고 난 뒤에야 '이제 감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웃는 것 같다. 인간을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하면서 실은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놓고 마는 오만함.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에서 몇 번 봤던 것 같다.

글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 때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라고, 주장하지 말고 보여주라고 말한다. 쉽지 않다. 누가 훌륭하고 잘났음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무능하고 나쁜 놈을 만들기도 한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영웅적 결단이나 희생이 아니라 평소 하던 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의 결과물이다. 그 일의 위대함을 보여주긴 더 어렵다. 이 영화가 한 건 뭘까. 확신과 흥분이 아니라 의심하고 숙고하는 태도가 한몫한 건 확실해 보인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