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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바엔 모병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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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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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공짜 없다.' 정확하고 옳은 말이다. 누가 공짜로 뭘 많이 주려고 하면 경계해야 한다. 남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뭘 취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공짜로 받고, 공짜로 남을 부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그게 이 말의 뜻일 거다. 김영란법의 취지도 같다. '공짜 돈 뒤엔 반드시 청탁이 따른다. 그러니 공짜 자체를 막자!'

모병제냐 징병제냐의 논의가 한창이다. 이걸 계기로 현 징병제의 문제들이 다시 불거진다. 금수저 자식은 군에 안 가네, 군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사병이 1만명이네, 스펙 중시하는 일류기업에 군필자 취직률이 바닥이네.... 그런데 10여만원에 불과한 사병들의 월급 수준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있어서 그런가. 아무튼 징병제 실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10년 전에 징병제 문제로 칼럼을 쓸 때, 복무기간 9개월의 징병제를 실시하던 독일군 사병의 월급을 봤다.(그 뒤 독일은 모병제로 바뀌었다.) 입대 최하 연령인 만 22살 남자의 각종 수당을 뗀 최저 기본급이 당시 우리 돈으로 180만원이었다. 부인이 있으면 10여만원, 자식이 있으면 10만원의 수당이 추가됐다. 이게 상식이 있는 사회 아닌가. 두 나라의 경제 사정이 다르다? 2015년 1인당 국민소득 순위에서 독일 20위, 한국 28위이다. 한국은 젊은이들에게 국가를 지키는 막중한 일을, 거의 공짜로 시키고 있다. 옛날엔 못살아서 그랬다 치자. 지금은?

지금의 징병제 모병제 논의에서 찝찝한 대목이 그거다. 징병제는 돈 안 줘도 된다는 고정관념! 돈을 안 준다는 건 많은 걸 설명한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모병제에 반대하는 한 패널의 말이다. "(지금 징병제의) 가장 큰 문제가 갇혀 있다는 느낌인 건데, 이건 자주 내보내면 됩니다." 돈이 없는데 나가서 뭘 하나. 사고 치지 말라고 묶어놓으니 감옥이 돼 버린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군에서 느끼는 구속감, 소외감은 사회가 살기 좋아질수록 더 커질 거다. 사고도 늘면 늘지 줄기 힘들 거다. 세상 공짜 없다면 국방에도 공짜가 없는 거다.

'징병제=공짜, 모병제=돈'이라는 전제 아래 이뤄지는 징병제 모병제 논의는 신뢰가 덜 간다. 몇 해 전에 한 친구가 "가난한 집 자식만 군대 간다"는 이유로 모병제에 반대한다는 말을 했다. "그럼 사병에게 평균임금, 최소한 최저임금이라도 줘야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럴 바엔 모병제 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 돈도 못 받고 고생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과, '공짜 좋아하는 심리'의 야합이랄까. 모병제 하면 가난한 집 자식만 군대 간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월급을 어떻게 주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거다.

나는 모병제를 적극 지지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사회가 지금의 징병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모병제가 아니고선 뚫고 나갈 방법이 없어 보여서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모두 돈이 든다는 전제 아래 논의가 오가야 한다. 지금처럼 공짜로 젊은이들을 부려먹는 징병제는 젊은이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공동체의 상식과 염치의 회복을 위해서도 바뀌어야 한다. 이게 징병제 모병제 논의의 출발점에 중요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다음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결벽증 환자로 보일 만큼 돈에 대해 정확하겠다는, 사회의 다짐이 반영된 법이다. 그런 법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공짜로 2년씩 일 시키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