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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시차의 개헌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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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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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에 난 군 복무 중이었다. 부대는 수도권에 있었고 영관급 장교가 많았다. 어느 날 야간 당직 사병이 상급 부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대령들 몇 명을 지목하며 더플백과 세면도구 갖고 출동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계엄이 선포되면 행정부처를 인수하는 책임자가 대령이래." "정말 계엄을 선포하는 건가?" 공포감에 한기가 올라왔다. 그때 야전부대에서 복무했던 한 친구는 계엄 선포 뒤 출동에 대비해 시민들을 상징하는 목표물을 향해 사격하는 연습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옛날 신문을 뒤지다가 87년 6월 한달치를 봤다. 시위 기사가 갈수록 많아졌다. 6월 말이 되면서 전국이 전쟁터로 변하는 듯했다. 1, 2면엔 매일같이 미국발 기사가 실렸다. '군 개입은 안 된다'는 국무부 논평과,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친서를, 특사를 보낸다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군이 나서지 못하게 해 달라고, 미국을 향해 사정하는 것 같았다. 군이 언제 나설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시위는 더 커졌고 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이 나왔다.

29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무성하다. 87년 헌법은 사명을 다했다, 지금 시대에 안 맞는다, 원래 과도적인 거였다.... 국민들은 그만큼은 아닌 것 같다. 여론조사들을 보면,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이가 반대하는 이보다 많으면서도 개헌에 '관심 없다'가 '관심 있다'보다 많았고, '20대 국회에서 개헌이 불가능하다'가 '가능하다'보다 많았다. 뭘 좋게 바꾸자는 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개헌인 만큼 잘해야 한다는 기대 혹은 숙제감과, 수월치 않을 거라는 예상에 더해 몇 가지 우려가 생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열망과 결집력이다. 87년엔 개헌을 위해 시민들이 총 맞을 각오하고 나섰다. 지금과 천양지차다. 지금 개헌을 향한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결집돼 있나. 더욱이 이번 개헌 논의엔 생소하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다. 그만큼 국민의 관심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말인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려면 어느 때보다 정치권의 신뢰도가 중요하다는 말일 거다. 여당보다 야당이 개헌 논의에 주도적인데, 이게 혹시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

지금의 여소야대는, 국민들의 야당에 대한 미더움보다 현 정권에 대한 미움이 커서 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야당은 존재감이 약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세월호, 국정 교과서, 시위 과잉진압, 그것들을 다루는 청문회나 특위, 이런 데서 야당이 이룬 성취가 있었나. 여소야대가 되니까 그렇게 속상하던 일들이 이렇게 풀리는구나, 정치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야당이 이런 걸 보여주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시점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그 자신감의 근거가 궁금하고 불안하다.

"여소야대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고 앞으로 가게 하라고 야당한테 내준 숙제인데, 그 숙제는 여소야대의 달성으로 끝났으니 이제 다른 숙제 하자, 이러면 곤란하잖아." "중요한 건 총론이 아니라 각론이다. 총론 다시 쓴다고 부실한 각론이 채워지나."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인데 둘 다 지난 총선 때 야당을 찍었다. 밀린 숙제건 새 숙제건, 총론이든 각론이든 다 잘하면 되겠지만, 개헌에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면 다 잘하기 힘들 텐데. 개헌 논의의 진원지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도 논의하면서 민생을 챙기는 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했다. 민생, 세월호, 국정원 문제 등 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쌓지 않고는 개헌 추진이 쉽지 않을 것 같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