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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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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FLAG
Maddie Meyer - FIFA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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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명절 이슈가 바뀌는 것을 살피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면 흥미롭다. 아마 예전에는 명절 음식 준비를 해야 하는 여성들의 고충이 주로 문제가 되었다면, 요 근래에는 친척과의 만남에서 받는 청년들의 스트레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유독 이런 것이 이슈가 되는 듯하다. 불과 백 여년 전만 해도 양반과 상놈으로 나눠져 있었고 양반만이 차례를 지낼 수 있었는데, 무슨 너나없이 모두 차례를 지내며 양반 행세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명절 이슈의 변화는 정확히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여성 노동력 착취 문제는 확실히 여성 권리에 대한 자각의 결과일 것이며, 청년들의 스트레스는 청년 실업 등 청년들이 겪는 사회적 고충이 투영된 것이리라. 그러면 반상 구별 문제는 왜 불거진 것일까. 그것은 아마 한국 사회가 근래 신계급사회로 이행하는 것 때문에 촉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백 여년간의 민족주의적인 통합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하나의 집단이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억과 망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개인도 그렇지만 한 인간 무리가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좋은 것, 나쁜 것 죄다 기억해서는 안되고 되도록 선별적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 민족의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적절히 잊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민족주의는 영화 <맨인블랙>에 나오는 기억 제거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당연하다. 지금 한국인들이 불과 백 여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양반 지배층과 다수의 상민,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노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도저히 지금처럼 같은 공간에서 배우고 일하고 교류하면서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 신분사회의 기억은 잊는 것이 좋다. 그것이 민족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한국의 민족 형성이, 특권 계급의 해체가 아니라 이른바 '전 국민 양반되기'라는 형태의 신분 상승 욕구로 뒷받침된 것에 있다. 이점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서유럽의 민족주의와 구별되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전통 신분사회가 식민지가 되면서 붕괴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이른바 피해자 민족주의로서 서유럽 민족주의에서 볼 수 있는 공화주의적인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오로지 핏줄에만 매달리는 배타적 민족주의이며, 물질적인 욕구와 신분상승의 차원에서만 평등한 민족주의이다.

서유럽의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 건설과정에서 요청된 측면이 있었다. 그들 역시 종교에 의해 통합된 중세사회로부터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들이 뭉쳐서 자본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범위인 국가를 건설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에 공화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점에서 각도를 달리한다.

그러니까 공화주의 없는 민족주의, 즉 한국의 민족주의가, 기껏 신분사회적 가치를 넘어서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물질적 욕망의 추구와 신분상승에서의 자유와 평등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이점이 한국 민족주의를 내용 없는 공허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공화주의적 내용을 갖지 않는 민족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적 발전이 결과한 계급 차이를 중세적 신분 차이로 인지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부터 양반이었다고 이 따위 차례를 지내야 하는가라는 볼멘 소리가 아래로부터 터져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이번 명절에서의 신분 논란의 바탕이며, 이번 명절 최고의 이슈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