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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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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혼례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지축이 흔들린다. 후금(청)의 기병대가 쳐들어온다.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례를 올리던 신랑과 신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시작 부분이다. 이 장면이 시종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국경도 변방도 아닌 조선의 한 마을 코앞까지 외적이 쳐들어오는데도, 관군은 그것을 막지 못하고 민중들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졸지에 당하는 것일까. 한국인들에게 난리란 그런 것일까. 과연 그때까지 그들이 누리던 그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결국 활을 잘 쏘는 영웅이 나타나 후금군을 물리치고 신랑과 신부를 구출한다. 도둑처럼 닥친 난리와 민중의 맨몸 대응, 이것이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전형적인 위기와 위기극복의 서사 아닌가. 그러면 이러한 서사가 갖는 의미는 진정 무엇일까.

우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의병과 그들의 국난극복 의지를 높이 칭송하지만, 사실 의병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으며,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은 비참한 것일지언정 영광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 의병은 국가와 국방의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외적을 물리치고 난 뒤 그들의 창끝은 나랏님에게로 향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랏님의 치하 한 마디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다음 난리가 날 때까지 개돼지처럼 죽어라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했다. 신화는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인데, 의병의 신화가 감추는 것과 드러내는 것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민중이 직접 나라를 지킬 것이 아니라 나라가 나라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민중의 진정한 잘못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에 있다. 그러므로 맨몸으로 외적을 막아낸 의병보다는, 국가라는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을 지켜낸 국민이 몇 십배, 몇 백배 더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병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더이상 의병을 미화하는 신화를 재생산해서는 안된다.

민중의 평화는 난리와 난리 사이에만 잠시 존재할 뿐이며, 그 거짓된 평화 속에서 그들은 개돼지로 살아갈 뿐이다. 민중의 귀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