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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표준'과 동아시아의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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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KOREA JAPAN CHINA
Harvepin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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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여행하는 내내 '동아시아의 근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대만은 시민 의식이나 사회의 합리성으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근대화 된 나라였다. 그런 점에서 대만은 동아시아 근대화에 또하나의 척도를 제공해주었다. 흔히 대만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대만은 중국과 일본의 성공적인(?) 혼종이었다. 그러면 대만의 높은 근대화 수준은 결국 일본의 영향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되고 서구 근대문명을 동아시아 문어로 번역함으로써,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저작권을 선취한 일본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일본 표준(Japanese Standard)'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결국 일본 표준에의 거리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의 차이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근대의 갈등 역시 그러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먼저 근대화된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어 다른 지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대만, 조선, 중국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확실히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주된 장면을 연출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영향, 즉 '일본 표준'을 어떻게 수용하고 내재화하는가의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하게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대만과 한국이 근대화 수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만과 한국의 차이가 단지 일본 지배 기간의 길고 짧음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 차이라는 것도 15년 정도로 그리 결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만은 일본 이전에 중국의 지배, 그리고 1945년 이후에는 국민당의 50년 지배를 받았으니, 한국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한국의 차이가, 나아가 동아시아 근대화의 차이가 '일본 표준'과의 거리에 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들 간의 갈등을 빚어내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동아시아 근대의 평화는 이러한 차이들을 좁혀나가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동아시아 근대에서 '일본 표준'을 인정하며, 결국 그러한 '일본 표준'에의 거리가 동아시아 근대의 차이들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을 모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된 근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근대 일본이 이룩한 성과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외면적으로 격렬히 거부하고 내면적으로 어슬프게 수용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제대로 된 근대화를 할 수 없다. 갈등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 복제를 통해 차이를 무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 자체는 어느 경우에나 철저히 주체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정적 차이를 해소하면서 긍정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행위에 다름아닐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