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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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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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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제사라고 하면 친척들이 모여서 싸우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누구 산소를 잘 썼느니 잘못 썼느니 하면서 말이다. 비록 '도구적 합리성'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것을 배우던, 박정희 레짐하의 나에게 그러한 명절 풍경은 미개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은 굿이 미신이라고 하면서 주위에 무당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제비산 아재'가 무당이었는데, 신고하지는 않았다. 만신 김금화씨도 이때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 아버지를 반동분자라고 신고해서 인민의 영웅이 되고 동상까지 세워진 어떤 소비에트 소년의 이야기가 <반공>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고발하라고 가르치는 공산주의가 얼마나 반인륜적인 체제인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당을 미신 전파자라고 해서 고발하고 감옥에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잘 알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제사는 사대부만의 특권이었다. 그것은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향반에 이르기까지, 자신들 권력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유교 가부장 국가의 숭고한 의례였다. 고로 민중은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하지만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신분 질서가 어지러워지면서, 제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 쪽으로 역사가 거꾸로 흘러갔다. 이것이 이른바 '온민족 양반 되기'의 면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향평준화를 통한 평등이 아니라 상향평준화를 통한 허위의식의 전면화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차례와 제사의 의미를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더이상 봉건적인 유교 국가의 의례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소박하게는 전통문화의 하나로 봐도 되고, 하다못해 그걸 핑계로 한 해에 한두 번씩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로 삼아도 안 될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차례와 제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 특히 여성들의 노력 동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제사를 전혀 지내지 않는다. 근대인인 나는 제사에서 아무런 내용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전통 의례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친척들 간의 교류가 주는 친밀감조차도 거의 제공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물론 조부모나 부모와 같은 가까운 조상과 망자에 대한 추모의 염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고 나 역시 그런 것을 느끼지만, 그러한 감정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승화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나는 내용적이든 외형적이든 간에 제사라는 것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런 내가 굳이 의례를 통해서 어떤 사람들을 추념하고 싶다면, 그것은 나의 조상이 아니라 어려운 역사 속에서 진실되게 살아가고자 한 이런 저런 인간들이 될 것이다. 내가 제사를 지낸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을 향한 것 말고 다른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