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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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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지배층은 우리 종족의 시조를 기자(箕子)라고 생각했다. 기자는 고대 중국 은나라의 왕족으로서 은이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조선에 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사실상 기자의 무리에 의한 (고)조선의 정복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조선의 지배층은 스스로를 중국 유민의 후손(정복민)으로 간주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현재 LA 교민들이 한반도를 본토로 생각하듯이, 이러한 의식 구조 속에서 중국을 상국으로 섬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미국과 정신적으로 동질적인(?) 의식을 가지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조선은 중국의 작은 집으로서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이다. 이를 오늘날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사실 일본의 계략이 크게 작용한 것이지, 그리 적실한 것은 아니다. 물론 오늘날 관점에서 그 시대를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19세기 중국이 영국과 일본에 잇따라 패하면서 더이상 제국(대국)의 위상을 갖기 어려워진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대신할 새 제국이 필요했다. 대안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리고 이즈음 민족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고, 우리는 이제 효용가치가 사라진 중국발(發) 기자(箕子)를 대신할 시조로서 단군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군은 중국적인 커넥션이 없는 존재로서,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추존된 민족의 새 시조였던 것이다. 단군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리고 기자보다 훨씬 오래된 유일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단군을 자신의 시조로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불과 백여 년 전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한 창조의 결과일 뿐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기독교의 유입으로 인해 아브람을 새로운 조상으로 섬겨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조상이, 신(神)이 그렇듯이, 그때 그때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역사란 그처럼 인위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섬기는 시조가 다른 조선인과 한국인을 결코 동일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주 최씨와 김해 김씨가 결코 동일한 씨족일 수 없듯이 말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DNA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은 형질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며, 문화란 언제나 '해석된, 그 무엇'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끔찍하게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가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조상을 만들어왔고 갈아치워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상 만들기는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라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다. 그러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뭔지 모르는 민족에게 바로 지금 현재가 없다는(현재를 모른다는 의미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가 주어져 있을 따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