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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養民)인가, 기민(棄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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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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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퍼센트는 개돼지라는 발언을 유교적인 양민사상의 타락한 버전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유교 국가는 백성을 먹여살리는 것, 즉 양민(養民)을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산의 <목민심서>도 목민관(牧民官), 즉 백성을 소처럼 기르는 관리를 위한 지침서가 아니던가. 이는 물론 지배층과 백성의 엄격한 신분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는 우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이러한 질서가 바뀐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그저 서구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었을 뿐, 우리 자신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민중이 이 땅의 주인이 된 적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배층이 그나마 유교 국가의 이념에 걸맞게 백성을 먹여살리거나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렇지도 못하고 다른 국가에 팔아넘긴 시절이 있었거나 할 뿐이라고 판단한다.

국가가 백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것은 결국 지배층의 착취가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축을 기르는 것이 가축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축을 잡아먹기 위해서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신분 질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발언 역시 그러한 구조의 재구조화를 기도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통은 참으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에 한완상 교수는 민중을 '즉자적 민중'과 '대자적 민중'으로 구분한 적이 있다. 즉자적 민중은 자신이 착취 당하는 존재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민중이며, 대자적 민중은 자신이 착취 당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민중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1980년대의 민중운동은 즉자적 민중을 대자적 민중으로 변화시키려는 엘리트 중심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그 대차대조표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 사회에 대자적 민중은 존재하는가. 즉자적 민중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적 민중을 형성하려던 민중운동은 이제 전반적으로 파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목민관(?)의 발언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현재 민중이 처해 있는 현실을 매우 잘 포착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커다란 발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