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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공예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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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영남으로 인해 '하청미술'이니 '납품미술'이니 하는 괴이한 용어가 출몰하고 있는데, 한국 공예에는 일찍이 '발주공예'라는 괴용어가 있었다(지금도 있다?).

발주공예란 말그대로 공예품 제작을 주문하는 것인데, 이때 주문이란 사용자가 공예가에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공예가가 공예가에게, 장인이 장인에게 주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왜 공예가(장인)가 공예가에게 주문하는 것인가. 그것은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받고 교수 되고 출세하기 위한 것이다.

공예란 계획과 제작이 일치하는 전산업사회의 생산 형태이다. 그러므로 공예란 원칙적으로 한 사람의 장인이 조형의 계획부터 제작까지 전과정을 일관되게 수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발주공예란 공예가가 계획, 즉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다른 공예가, 즉 장인에게 맡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이다.

발주공예는 기본적으로 한국 현대공예의 기형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뛰어난 공예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전통공예의 물질적, 정신적 기반은 붕괴되고 만다. 이러한 전통공예의 폐허 위에 새롭게 구축된 것이 바로 식민지 공예 제도이다. 그 핵심은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 공예부였다.

선전 공예부는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공모전이었다. 여기에 출품하여 상을 타면 공예가로서의 출세가 보장되었다. 이전까지 조선의 목공예와 도자기를 만들던 장인들은 앞다투어 선전에 출품했고, 조선의 공예는 삶의 맥락을 상실한 채, 공모전용, 감상용, 개인출세용 작가주의 공예로 변질되어갔다.

식민지 공예 제도는 해방 이후에도 청산되기는커녕 대학 제도의 성립과 함께 더욱 확산되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국명만 바꾼 채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며, 신식민지의 공예가들 또한 국전에서의 출품을 통한 성공 이외의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국전 공예부에서 수상하면 대학 공예과 교수가 되었고, 그들이 국전의 심사위원과 초대작가를 맡으면서 대한민국의 공예계는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민중의 아름다운 밥그릇과 생활용품을 만들어야 할 공예가들이 그것을 외면하고 오로지 공모전 출품을 통한 출세에만 목을 매게 되었을 때, 거기에 온갖 부정과 편법, 비리가 난무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발주공예'라는 공예 역사상 전무후무할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출신의 엘리트 공예가들은 자신이 직접 땀을 흘리는 대신에 대충 그림만 그려서 왕십리나 미아리의 하층 장인들에게 제작을 맡겼던 것이다. 당시 대학 교수나 엘리트 공예가들에게는 모두 전속 장인들이 하나씩 있었으니, 한국 공예는 일찌감치 발주-하청의 구조를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알던 목공예과 교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은 말로 지시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만 해주는데, 그래도 자기는 설계도를 그려주니 남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이것은 디자인일 수는 있지만 결코 공예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과 관행이 해방 이후 한국 공예계를 지배해왔다.

사실 공예계만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서서히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지만, 한국의 근대란 바로 이러한 일들이 머리털처럼 많이 벌어진 암흑의 시대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고, 열을 보면 하나가 더욱 분명해지듯이, 한국 공예의 모순은 바로 한국 근대의 모순 그 자체의 일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대학 공예학과의 몰락을 환영하는 바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공예 제도는 그 자체가 공예의 배신 위에서 성립되었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아마 이 부분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타락한 것이 아니듯이, 공예과에도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있으니까, 너무 일반화하지 말라는 반론이 예상되지만 이는 무시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적하는것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한국 공예 제도의 핵심적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공예의 미래는 식민지 공예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고 확대생산해온 대학공예의 극복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발주공예라는 괴용어의 청산과 함께 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