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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님께 해설위원이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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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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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프로레슬링 및 격투기 해설을 하고 있는 김남훈 이라고 합니다.
어제 논설위원님께서 쓰신 서간문을 읽고 느낀 점이 있어 이렇게 답장을 드립니다.
몇 권의 졸저가 있기는 하나 전문적인 글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닌지라 읽는데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힘을 내 나아가자라고 젊은이들에게 격려를 하는 모습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부정적이라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겠지요. 위원님께서 '늙는다는 건 罰(벌)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젊음이 딱히 축복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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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의 상징 고길동

위원님은 혹시 '아기공룡 둘리'라는 만화를 아시는지요. 김수정 화백께서 만화 전문지 보물섬에 1983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주인공 둘리는 전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캐릭터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빙하기 때 얼음 속에 냉동되어있던 둘리가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서울까지 흘러들어와 고길동 집에 머물며 좌충우돌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입니다. 이 만화에서 주목하고 싶은 등장인물이 있는데 바로 고길동입니다. 극 중 30대 초반으로 나오는 고길동은 아마 위원님과 비슷하거나 약간 윗 연배에 속할 것입니다. 만화 속 배경이 되는 고길동의 자택은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단독 주택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고길동이 직접 구입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래 집에 돈이 많았거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둘리의 친구 도우너가 갖고 있는 타임머신을 타고 고길동이 어렸던 시절로 타임슬립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시골 초가집의 아주 가난한 환경이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며 자가 주택을 구매했던 것이죠. 대출금이 얼마 있는지는 모르지만 둘리와 일당들에 의해 집이 두 번이나 대파가 되었음에도 모두 재건축을 한 것을 보면 나름 여유가 있는 형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만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대학생들은 한두 달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학기 등록금을 벌 수 있었고 직장인은 맞벌이를 하며 몇 년 바짝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현재 청춘의 영역에 있는 대학생들은 상당수 빚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도 안 했는데 학자금 대출 등으로 통장에 마이너스가 있는 겁니다. 만약 직장에 들어가면 집을 살 수 있을까요? 통계청의 2012년 연간 가계동향조사와 국민은행의 2012년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토대로 살펴보면, 소득 3분위에 속하는 중간 계층이 주택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7.1년이라고 합니다. 서울 기준은 무려 54년이 걸린다고 하는군요. 54년입니다. 54년.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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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웹진 http://sisun.tistory.com/1296

위원님께서는 임금피크제를 말씀하셨는데 과연 지금도 10대 대기업 현찰 보유금이 125조원으로 사상 최대인 상태에서 아버지 세대의 급여를 줄여 자식들을 취직시키겠다는 정부의 '선한 정책'에 기업들이 선뜻 응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제가 더 걱정하는 것은 손쉬운 해고 입니다. 저성과자 해고는 악용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만약 논설위원님을 신문사 지국 배달사원으로 배치한다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배달을 해야 한다면 저성과자가 되실 겁니다. 이전에는 조금 좋은 회사, 규모 있는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면 퇴직금에 이런저런 위로금까지 받으며 나와 하다못해 치킨집이라도 차릴 수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것도 못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좀 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위원님의 바람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필요합니다. 학력고사 세대이면서 마흔을 넘긴 저도 서울에 처음 올라와 했던 일이 식당 종업원과 주차장 빼박이었습니다. 테이블을 닦다가 생선 가시가 손가락에 깊숙이 박히기도 했고 진상 손님 때문에 속을 끓이기도 했습니다. 식당 구석진 방에서 방석을 베개 삼아, 이불 삼아 덮고 잤습니다만 근거 없는 낙관 즉 '희망'은 있었습니다. 저 때만 하더라도 몸 성하고 정신 말짱하면 어디 가서 밥은 굶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은 그렇지 않습니다. 빈곤합니다. 가난합니다. 모든 통계와 구조를 봤을 때 자기 몸 건사하며 살 수 있는 그리고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더더욱 상황은 악화될 뿐입니다.

위원님. 저는 자본주의의 온갖 장점과 미덕을 경험하며 중년을 맞이한 사람입니다. 제가 IS 점령지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삶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겁니다. 위도 38도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살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겐 한국에서 태어난 게 복입니다. 지금 젊은이들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게 행운입니다. 대출금을 끼고 있으나 몸 누일 집도 있고 취미로 즐기는 모터사이클도 있으며 한 달에 두세 번 스테이크 무한 리필을 갈 정도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프로레슬러의 꿈도 진작에 이루었으며 다음 달 초에는 PWF 챔피언벨트에 도전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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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에서 가장 흥겨웠던 장면 '내집 마련'

위원님.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입니다. 온갖 고생을 다했던 덕수(황정민 분)가 아버지 사진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지요. 독일 탄광에서 석탄 캐고 월남에서 총알 맞아가며 경제를 부흥시켰던 더 윗세대 시니어들이 계셨기에 위원님도 열심히 세상을 사실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문명 사회를 살고 있는 책임 있는 시니어라면 '더 고생해라'가 아니라 다음 후배,후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물려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할 스탠스가 아닐까요. 위원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