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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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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DC의 야심작이었다. 마블을 단숨에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배트맨 대 슈퍼맨>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기에, 악당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역전까지는 아니어도 주목받기를 원했다. 예고편에 등장한 마고 로비의 할리퀸이 원작 캐릭터와 100 아니 1000%의 싱크로율을 보이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성공은 명약관화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소문은 어두웠다. 뒤늦게 편집을 바꾸고, 재촬영을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마침내 개봉을 했지만 초반부터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퀸의 영화다. 원래 주인공은 데드샷이었겠지만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처음 설정은 조연이었는데 쓰다가 보니 작가의 마음이 가서 주인공으로 바꿨다는 경우는 종종 있다. 만약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퀸의 비중이 작았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하여튼 결과론으로 본다면 DC는 선전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8월 14일까지 총수익 8억7천만 달러로 애초 목표인 9억달러에 근접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8월 14일까지 4억6천5백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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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할리퀸이 무엇이기에, 아니 어떤 캐릭터이기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일까. 할리퀸은 조커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처음 등장했다. 감옥에 갇힌 조커와 정신상담을 했던 할리 퀸젤 박사. 그러나 사람을 유혹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조커에게 넘어가 그를 탈옥시킨 후, 조커가 탄생했던 용액 탱크에 빠졌다가 나온 후 할리퀸이 된다. 조커의 사랑을 갈구하며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여인. 당시 할리퀸의 캐릭터는 조커의 사이드킥일 뿐이었다. 조커는 할리퀸을 멋대로 이용하고 버린다. 전형적인 '사랑에 미친 년'인 할리퀸은 세월이 흐르면서 성장한다. 조커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내버리기도 한다. 조커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고, 온갖 짓을 벌일 수 있다. 남자들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음껏 살아가는 '미친 년'. 그게 할리퀸이다.

여전사가 어제 오늘의 사건은 아니다.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와 <에일리언>의 리플리는 80년대의 대표적인 여전사였다. 마이너하게는 < 코난2 >에 나왔던 그레이스 존스나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도 있다.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 <코피>와 <폭시 브라운>도. 90년대에는 다양해진다. 리들리 스코트의 <델마와 루이즈>는 이제 고전이 되었고,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언더월드>의 케이트 베켄세일 등은 섹시한 여전사로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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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은 아름답다. 부담스럽지 않냐고? 그럴 수도 있다. 당신에게 주먹과 발을 휘두른다면. 하지만 50년대 필름 누아르의 팜므 파탈은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고, 결국 남자를 희생시켜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여성들. 팜므 파탈은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두려움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여전사도 그런 의미가 있다. 또한 여전사는 섹시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순정을 바친다. 오히려 남자가 배신하고, 치졸하고, 야비하다. 그러니까 싸우는 여성은 한편으로 남자들의 구태의연한 이상형이기도 하다. 강하지만 나한테만은 약한 여성.

하지만 요즘 여전사는 다르다.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는 남성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하지도 않고, 사랑을 찾아 떠나지도 않는다. 다른 여성들과 함께 그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다. 아름답지만 섹시함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좋다. 나는 언제나 싸우는 여성이 좋았다. 섹시하면 좋고, 섹시하지 않아도 멋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것은 어리고 귀여운 척 하는 여성 캐릭터. 그러니까 일본에서 모에 붐이 일면서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어려 보이는' 여성 캐릭터가 싫다. 그건 마치, 찌질하고 나약해진 남자애들이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자신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약한 여성을 이상화한 것만 같다. 강한 여성이 얼마나 멋진가.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원더우먼이 둠스데이의 주먹에 맞아 한참을 날아가 나동그라진 후 일어나 씩 웃는 장면이다. 오, 이거 재미있는데, 라고 말할 것만 같은 원더우먼의 미소에 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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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히트작을 리메이크한 <고스트버스터즈>의 여전사들도 그래서 즐겁다. <고스트버스터즈>의 원작 4명의 남자를 다 여자로 바꾸어 놓았다. 리플리를 연기했던 시고니 위버가 약간 섹시한 모습을 보이며 악마에게 빙의되는 역은 남자인 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넘겨주었다. 그, 진짜 마초 전사인 토르 말이다. 그는 너무나도 멍청하고,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생각해보면 토르도 그렇지 않았던가? 4명의 여자들은 모두 보통의 여성들이다. 엄청나게 섹시하거나, 엄청나게 근육질이 아니다. 과학을 좋아하고, 유령 잡기에 열광하는 너드 여성들.

사실 그동안 여전사는 거의 다 섹시했다. <글로리아>의 지나 롤랜즈는 이미 나이가 50이었으니 섹시하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영화가 전설로 남았다. 여성이 세상을 구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려면 보통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만 해도 네 명의 남자들은 그리 잘난 게 없었다. 리메이크의 여성들과 똑같은 보통의 인간들이다. 별 거 아닌 보통의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고, 엄청난 일을 하면서 영화와 소설에 등장했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스트버스터즈>는 별 것 아닌 역할교대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보통의 여성들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더욱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여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는다고? 그건 당신이 매력이 없으니까 그렇지. 당신이 더 멋진 남자가 되면 여자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당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것이다.


* 이 글은 [아레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