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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상상하는 포르노가 제일 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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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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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야설을 만난 것은 포르노영화, 잡지, 만화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까지 뛰어난 야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야하다고 소문난 소설들을 찾아봤다. 다나카 야스오의 『어쩐지 크리스탈』이란 소설이 있다. 1981년에 아쿠다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어쩐지 크리스탈』은 학생운동이 완전히 종식되고 풍요로운 버블 시대를 살아가는 198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야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일본에서도 화제라고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온갖 새로운 상품을 설명해주는 카탈로그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물질로 소비하는 시대, 크리스탈처럼 아름답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라는 존재.

흔히 일본 소설은 이상한, 변태적인 것을 많이 다룬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비하면 그렇기도 하다. 한국보다 훨씬 인구가 많으니 다양한 것을 욕망하거나 즐기는 사람도 많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비주류 문화도 자생할 수 있으니 이상한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경로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막상 읽다 보면 결국은 다 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조금은 사소하고, 조금은 대단한 섹스. 상황과 주체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지는 섹스와 인간의 위상.

야설이라고 하면 일단 포르노를 생각한다. 물론 포르노라고 해도 걸작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통 포르노라는 생각을 하면 바로 배척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야설이라는 이름 대신 관능소설이나 성애소설 등으로 성을 다룬 소설을 부를 수도 있지만 아직 널리 통용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야설이라는 단어가 공식 용어로 쓰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명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되면 좋을 것이다. 다만 명칭이 무엇이 되건 핵심은 아니다. 결국은 내용이고, 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제일 중요하니까.

성을 다룬 소설은 문장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남자의 성적 욕망은 시각에 의해 상당 부분 충족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 신체적인 자극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짜 쾌락은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뇌에서 상상하고 스스로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설은 느리지만 서서히 밀려드는 거대한 해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야설 이상으로 『크래시』, 『데미지』 같은 소설에서 묘한 흥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한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에게 완벽하게 빠져들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가. 무생물에게 욕망을 느끼고, 죽음의 과정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가.

그런 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소설이 역시 좋다. 단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단지 그것만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뇌이니까.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