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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2) 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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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러>의 전략은 절대로 위선을 떨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도덕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속으로는 온갖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니는 정치인이나 종교인을 조롱할 수밖에 없었다. <허슬러>의 기사와 칼럼, 만평 등은 지극히 공격적이고 외설적이었다. 대통령과 유명한 종교인이 파티에서 애널 섹스를 하는 그림 정도는 늘 실렸다. 그러다가 결국 참지 못한 폴웰 목사가 고소를 한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 재판을 거치면서 래리 플린트는 거의 포기 직전까지 몰리며 힘들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재판장은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윌리엄 렌퀴스트였지만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며 래리 플린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후로 미국의 언론은 물론이고 영화, 개그 등에서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등 공인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얻게 되었다.

1996년 《래리 플린트》가 만들어져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공개했을 때 영화제 취재를 가게 되었다. 유력한 그랑프리 후보작이어서 주의 깊게 영화를 보았고, 감독인 밀로스 포만의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우디 해럴슨과 코트니 러브의 연기도 좋았다. 지금도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 《래리 플린트》를 보면 당시 찬반 입장이 워낙 격렬하여 정신적으로 심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래리 플린트는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리기도 한다. 1978년에는 총격을 당해 휠체어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만약에 내가, <허슬러>(의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을 수 있다면 미국의 모든 사람들, 매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라고. 누구는 저속하고 쓰레기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그런 <허슬러>가 보호받는다면 이후로는 어떤 매체건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허슬러>의 승소로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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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떠올렸다. 마광수와 장정일 등등. 외설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들은 기존의 문단에서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기는커녕 작품의 수준이 안 되니까, 지지하면 한통속으로 묶이니까 등의 생각으로 외면했다. 작품의 질을 따져서, 상층이면 보호받아야 하고 쓰레기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엘리트주의고 파시즘이다. 쓰레기라 해도 보호받을 가치가 있고, 동의하지 않아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같은 외설 혐의로 걸렸을 때는, 그나마 이현세가 만화계의 현역 원로급이기 때문에 만화계의 지지와 옹호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편 씁쓸하기도 했고.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