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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어른들의 이야기 1) 플레이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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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는 1953년 휴 헤프너가 창간한 잡지다. 흔히 포르노잡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플레이보이」는 포르노라기보다 누드 사진을 싣는 남성 잡지라고 할 수 있다. <맥심>과 같은 남성지는 야한 사진을 싣지만 유두가 노출된 사진은 거의 싣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는 유두가 나오고, 성기의 모습도 어느 정도까지는 나오지만 성기를 클로즈업하거나 성행위 사진을 노골적으로 싣는 경우는 없다. 포르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누드 사진이다. 그런데 최근 <플레이보이>에서는 아예 누드 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누드와 포르노를 인터넷에서 거의 무제한으로 볼 수 있게 된 21세기에는 고급한 누드를 보여준다는 <플레이보이>의 목표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한때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에디터로 일하기도 했던 휴 헤프너는 분명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적인 남성 잡지와는 노선을 달리 하는 '잘 노는' 남자의 잡지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기존에도 누드 잡지는 있었지만, 그런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블루 컬러의 저급한 취향을 가진 부류로 취급되었다. 휴 헤프너가 원한 것은 중산층의 회사원이나 지식인들도 거리낌 없이 볼 수 있는 '남성' 잡지였다. 품격 있는 인터뷰와 칼럼, 세련되고 도발적인 일러스트레이션,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누드 사진 등이 어우러진 남성 잡지라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휴 헤프너는 당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게 된 마릴린 먼로가 이전에 찍었던 누드사진을 입수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먼로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했다. 1953년에 창간한 <플레이보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남자가 <플레이보이>를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변명거리는 확실하게 있었다. 노먼 메일러와 존 어빙과 커트 보네거트 등의 소설, 존 레논과 마틴 루터 킹과 피델 카스트로 등의 인터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논픽션 그리고 칼럼이 실린 <플레이보이>는 종합적인 교양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저속하고 천박한 문화를 다룰 때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저속하니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문화를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변형하는 것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소비층이 생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그랬듯이.

<플레이보이>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70년대는 그야말로 흥청망청의 시대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60년대 젊은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시대를 뒤흔들었던 에너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었다. 그중 하나는 섹스였다. 프리섹스와 스와핑이 흔해지고 쾌락주의가 대두되었다. 명상과 수행에도 섹스가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토끼의 귀 장식을 머리에 달고 하이레그에 탱크탑, 검은 스타킹의 바니 걸이 시중을 드는 플레이보이 클럽이 미국 전역에서 성업했다. 휴 헤프너는 자택인 플레이보이 하우스에서 <플레이보이>에 나온 모델인 플레이메이트들과 연일 파티를 벌였고, 빌 코스비와 플레이메이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의 풍경을 그린 미국 드라마로는 앰버 허드가 나온 《더 플레이보이 클럽》이 2011년에 방영되었지만,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시즌 1도 채우지 못하고 7개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렸다. 50년이 흘러도 세상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