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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게가 만화방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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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빛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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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인 <만화광장>이 창간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 대학에 들어간 85년부터는 한국 만화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잡지밖에 없던 상황에서 <만화광장>에 이어 주간지인 <매주만화>, <주간만화>, <미스터블루> 등이 연이어 만들어지고 이현세, 허영만, 고행석, 이재학, 김혜린, 신일숙 등 다양한 장르의 뛰어난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 만화들이 번역되어 만화가게에 대규모로 깔리게 되었다.

이즈음부터 만화가게는 '만화방'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만화가게는 그야말로 조그마한 가게였다. 동네의 허름한 가게 안에 판자와 고무줄을 이용하여 벽에 만화가 걸려 있었다. 책상은 없고, 의자도 등받이도 없는 나무의자였다. 대학교 앞에 많이 생겨났던 만화방은 규모부터가 달랐다. 기존 만화가게보다 훨씬 큰 공간에 푹신한 의자와 편하게 볼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한쪽에는 늘 비디오를 틀어주는 TV도 있었다. 그리고 통금이 없어지면서 심야 영업을 하는 만화방도 많았다. 술을 마시다가 잘 곳이 없으면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다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근처에는 아예 숙식이 가능한 만화방도 생겨났다. 샤워실과 개인 락커가 있고, 수면실도 따로 있었다. 빈궁하여 여인숙을 빌리기에도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그곳에 기거하면서 일을 나갔다. 그런 만화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 본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가 술집에서 일하다가 싸움이 났고, 상대가 부상당해 입원한 것을 알고는 도망쳐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그 녀석이 숨어 있던 곳이 서울역 앞 만화방이었다. 말로는 아주 좋다고 했다. 잠도 자고, 샤워도 하고, 마음대로 만화도 보고 TV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친구와 함께 가 봤지만 그냥 만화방이었다. 학교 앞 만화방보다 훨씬 크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음침한 느낌이 드는 공간. 어른의 공간이기는 했지만 굳이 들어가고는 싶지 않은 공간.

후일 김홍준 감독의 영화 《장미빛 인생》에 그 시절의 만화방이 등장했다. 그렇게나 미인인 만화방 여주인은 현실에서 본 적이 없었지만 풍경만은 꽤나 사실적이었다. 당시에 운동권 학생들은 만화를 무척이나 즐겼고, 건너 건너 누군가는 정말로 이대 앞에서 만화방을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만화는 당시의 대학생들에게 친숙한 문화였다. 《장미빛 인생》은 퇴락한 변두리의 만화방을 통해서, 아련하게 그 시절의 추억을 장밋빛으로 감쌌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