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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Headshot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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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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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형, 형 친구와 함께 집 앞에 있는 다방에 들어갔다. 영빈다방. 형은 곧 졸업할 고3이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나도 명목상 보호자가 있는 것이니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방에서 비디오를 봤다. 영화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다방에서 비디오를 튼다는 것. 당시 커피 한 잔에 300원 정도 했다. 커피 한 잔을 시키면 최소 한 편에서 길게는 세네 편을 볼 수도 있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에도, 영화를 보기에도 최적의 장소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고2가 되어서는 거의 매일같이 다방을 드나들었다. 영빈다방과 신촌 기차역 앞에 있는 귀하다방 두 곳이 단골이었다.

청소년 시절, 다방에서 많은 영화를 봤다.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기껏해야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틀면 손님이 많이 온다는 정도였다. 다방과 만화가게에 전문적으로 비디오를 빌려주는 업자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러서 일괄적으로 몇 개씩 테이프를 바꿔줬다. 액션, 코미디,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알아서 큐레이션해준달까. 그들도 딱히 전문적인 정보는 없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대규모 조직으로 움직이게 되면서 틀어주는 영화들이 다양해졌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홍콩 영화는 기본이었고 한국에서 상영이 불가능했던 일본 영화도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 당시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던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출연한 《사토미 팔견전》 등도 다방에서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의 다방은 이미 대학생들이 가는 곳이 아니었다. 카페라는 이름의 공간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차이는, 내부 장식이 세련되었고 마담과 레지가 없다는 것. 음료의 종류가 조금 더 다양하다는 것. 대신 다방보다는 모든 음료가 100원 정도 더 비쌌다. 그 시절의 100원은 지금의 천 원 정도일까. 비디오를 보지 않으면서 다방을 간 경우는, 이야기를 할 곳이 필요한데 주변에 카페가 없을 때였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눈을 피하고 싶을 때였다. 학생운동이 한창 전성기일 때라,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운동권의 사람을 만날 때는 카페보다 다방을 고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곳에는 대학생들이 거의 없어 감시하는 경찰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다지 개연성 없는 판단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다방은 중년 아저씨들이 가서 노닥거리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젊을 때의 우리들은 마담과 레지가 있는 다방이 필요 없었다. 당시의 카페는 칸막이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칸막이 안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할 수도 있었고, 연인과 키스를 하거나 조금 더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 다방을 갈 이유는 더욱 더 없었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공간은 90년대가 되어 보디가드 등의 카페 체인점이 생겨나면서 익숙해졌다. 통유리로 안과 밖이 훤히 보이고, 테이블마다 전화가 놓여 있어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다른 테이블로 전화를 걸 수도 있는 공간. 개인은 폐쇄적인 자신만의 공간을 원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기를 원한다. 집단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자기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방된 공간이 필요해진다. 인터넷 시대의 SNS처럼.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