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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백갈등의 현실과 공화당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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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CONVENTION
Rick Wilking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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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에서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 다음날 미네소타 주 쎄인트폴에서도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 다음날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아프가니스탄 참전군인 출신 흑인의 경찰에 대한 조준사격으로 5명의 경찰이 사망. 일주일 뒤 배턴 루지에서 복면을 쓴 흑인의 무차별 총격으로 경찰 3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 다음날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나흘간의 공화당 전당대회 개최. 도널드 트럼프 정식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

미국에서 흑백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무장한 흑인들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건은 흑백갈등을 증폭시키며 심각한 소요의 뇌관으로 작동될 소지를 안겨주곤 한다.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들에게 구타당한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현재까지 가장 심각한 흑인폭동으로 기록되었다. 2014년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십대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소요가 발생하자 제2의 로드니 킹 사태로 번질까봐 미국은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이전의 백인 경찰=가해자, 흑인=피해자의 공식에서 벗어났다. 흑인들이 경찰에게 총격을 가해 상당수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는 퍼거슨 사태가 재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오히려 백인들의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민간인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오랜 서부시대를 겪은 미국은 법과 질서를 최우선의 가치로 본다. 그 법과 질서를 집행하는 보안관은 법과 질서, 그리고 정의의 사도로 추앙받는다.

공화당의 '백인 전당대회'

공화당 전당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터진 일련의 사태는 트럼프에게 호재일 수밖에 없었다. 흑인 법무장관, 흑인 국토안전부 장관을 포진한 흑인 대통령 임기 중에 흑인 총격사건과 흑백갈등이 오히려 증가되었다고 비판하던 트럼프 측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십분 활용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법과 질서'를 수호할 적격자라고 역설했다. 전당대회장의 분위기는 이전의 여느 공화당 전당대회장과 비교해서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한가지 아주 특이한 부분은 전당대회장의 얼굴 색깔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흑인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는 20세기까지 포함해서 역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적은 수의 흑인 대의원이 참석한 전당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백인 전당대회'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백인 전당대회'라는 말에 반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당하게 흑인 문제를 비판했다. 물론 겉으로는 인종을 차별하거나 폄하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지금의 흑인들이 겪는 사회, 경제, 문화적인 문제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문제라는 것을 부각시켰다. 2014년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백인 경찰에 희생당한 흑인들의 인권을 주창하는 흑인민권운동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운동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인종주의 따위는 더이상 있을 수 없다. 백인들이나 아시아인들의 생명이 소중한 것보다 흑인들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BLM운동이 최근에 벌어진 경찰에 대한 총격을 조장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법무장관이 BLM을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 단체를 수사하도록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정도면 흑백갈등을 대선의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흑백갈등에 대한 트럼프의 위험한 도박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이후 그 어느 공화당 대통령후보도 흑인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흑인들의 표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흑백 문제는 거의 모든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다만 그 문제가 너무 민감하기에 어느 후보도 그것을 수면 위로 부각시키지 못할 뿐이었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방법이 많지만 그 구분의 밑바닥에는 흑백 문제가 존재한다. 보수세력은 근면하고 성실한 백인의 땀으로 게으르고 무책임한 흑인들이 혜택을 받는다고 불만이고, 진보는 소외되고 차별받는 흑인들이 평등한 미국 시민의 일원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트럼프 진영에서 흑인 대통령 임기 중에 흑백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계적으로는 맞지만, 현재 미국의 현실 속에서 흑인들이 평등한 미국의 시민으로 자립할 수 있기에는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제반 여건과 환경에서 너무나 취약하다. 이것은 단순히 흑인들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그동안 대통령선거에서 금기사안이었던 흑인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이것이 보수 백인층을 겨냥한 전략이라 할지라도, 심각한 흑백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뇌관을 장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트럼프가 무슬림과 이민자들에 대해 내뱉었던 '막말'과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한 '막말'은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흑인들에 대한 '막말'과 노골적인 흑백갈등 조장은 걱정이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어 흑백갈등이 증폭되고 그것이 상상할 수 없는 소요로 확산될 경우,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 교민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전당대회에서 BLM을 공격하면서 "백인들이나 아시아인들의 생명이 소중한 것보다 흑인들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라고 비아냥거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왜 아시아인을 포함시켰을까? 근본적으로 흑백갈등에서 촉발된 로드니 킹 사건에 따른 LA 폭동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교민이 희생을 당했는가.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