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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수능 개편,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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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1안은 국어, 수학, 탐구(과학/사회/직업탐구 중 1과목) 등 3과목은 현행 상대평가를 유지하고 영어, 통합사회, 통합과학, 한국사, 제2외국어 등 나머지는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안이다. 2안은 전과목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안이다. 여기서 절대평가란 과목별 성적을 점수 없이 등급만 부여하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1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이번 수능 개편안은 1안으로 가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2안으로는 도저히 변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등급제 절대평가로는 지원자 중에 동점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누가 봐도 2안은 버리는 안이다.

그렇다면 수능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대선 공약이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이 공약은 불합리한 공약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부족한 변별력을 보완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절대평가에는 등급제가 아닌 '점수제'도 있고, 그밖의 변별 방법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거론하기로 하고, 이번 수능 개편안 1안/2안의 문제점을 각각 살펴보자.



1안의 첫 번째 문제는 학습부담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함으로 인해 학습부담이 감소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1등급(90점 이상)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학습부담은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수학, 국어, 탐구과목은 상대평가가 유지된다. 그리고 학습분량은 오히려 늘었다. 기존 제도에서는 탐구(과학/사회/직업)과목은 5단위 짜리 두 개를 선택하게 되어있으므로 10단위 분량에 해당했다. 그런데 새 제도에서는 공통과목인 통합사회·통합과학 각기 8단위에 선택 탐구과목 1개(5단위) 도합 21단위 분량이다. 학습해야 하는 분량이 늘어난 것이다. 요약해 보면, 부분적 절대평가로 인한 부담의 감소는 학습분량의 증가로 인한 부담의 증가로 인해 상쇄될 것이다.

1안의 두 번째 문제는 탐구(과학/사회/직업)과목이 여전히 상대평가여서 '선택의 왜곡'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평가 하에서는 물리나 경제처럼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이 선호할 것으로 보이는 과목'은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기피 대상이 된다. 우수한 학생과 경쟁하여 석차에서 밀리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행 수능 과학탐구에서는 물리 선택자가 가장 적고, 사회탐구에서는 경제 선택자가 가장 적다. 제2외국어 중 가장 선택자가 많은 과목이 어처구니없게도 아랍어이다. 모두 상대평가로 인한 왜곡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의 대학입시에서 상대평가가 전무한 것은, 상대평가가 선택을 왜곡시켜 '다양한 교육'과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안에 의하면 다행히 제2외국어는 절대평가로 바뀌지만, 탐구(과학/사회/직업)과목은 여전히 상대평가이다. 물리와 경제는 매우 중요한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피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수능 개편안을 설계한 사람은 평가 전문가가 아님이 분명하다.

1안의 세 번째 문제는 대선공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나름의 문제가 있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다. 그래서 대선 공약집 214쪽에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수능은 절대평가로 추진"이라고 명시된 것이다. 여론도 불리한 것은 아니다. 최근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1022명 대상 6.19-21 시행)를 보면, 수능 평가방식 현행 유지에 찬성하는 비율이 39.9%이고 절대평가 등급제로 전환하는 데 찬성하는 비율이 60.1%이다.



2안의 문제는 당연히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변별이 평가의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쨌든 대학은 동점자 가운데 합격자를 가려낼 기술적 기준이 필요하다. 과목별 등급만 주어지게 되면 동점자가 대량 발생하는데, 이것은 상위권 대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하위권 대학들도 공히 겪게 될 문제이다. 따라서 나에게 1안과 2안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면 1안을 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2안에 변별력을 더하는 방법을 고려하여 3안을 구성할 수 있다. 수능(등급)에 내신성적을 더하거나(3-1안), 수능(등급)에 면접성적을 더하되 면접이 제2의 본고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거나(3-2안), 수능(등급)에 수능(점수)를 병행 즉 절대평가 등급제와 점수제를 병행(3-3안)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방안의 장단점은 치열히 토론되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공히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

1안과 2안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점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번 수능 개편안은 고교학점제와 어긋난다. 사람들은 '국영수는 필수, 사회·과학은 선택'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 국가교육과정에 의하면 국영수도 필수과목은 고1에 배우는 범위까지이다. 고2,3에 배우는 내용은 국영수라 할지라도 선택과목이다. 다만 여태까지 선택을 학생 개인이 하지 않고 학교에서 집단으로 했기 때문에 선택과목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고교학점제가 시작되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국영수라 할지라도 고1 과정만 공통과목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수능을 보면 고교학점제의 이러한 취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고2,3에 배우는 내용까지 모두 수능 국영수에 포함되어 있다.



김상곤 장관의 사실상 첫 작품인 수능개편안을 보면서 참여정부의 실패가 떠오른다. 참여정부는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먼저 내놓았다. 2004년에 집권 마지막해인 2007년(2008학년도 대입) 치러지는 수능에 '등급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해버린 것이다. 상대평가를 유지하되 점수 없이 상위 4%까지 1등급, 상위 4~11%까지 2등급,... 이런 식으로 등급만 부여하는 방안이었다. 그러자 변별력을 우려한 상위권대학을 중심으로 정시전형에 논술을 다투어 도입했고, 결국 2008학년도 대입 정시전형은 수능+내신+논술을 합산 반영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되어버렸다. 학생·학부모의 부담이 커졌고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참여정부 최악의 정책실패 중 하나였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입 3년 예고제'를 무시하고 1년만에 수능 등급제와 정시 논술을 폐지하자 학생·학부모들은 안도했다.

이번 수능 개편안도 마찬가지이다.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성급히 내놓았다. 내용을 보면 1안으로 가면 현행 대비 나아지는 게 없고, 2안 자체로는 변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누구나 1안을 찬성할 수밖에 없도록 이상한 양자택일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 '전형 관리'라는 큰 그림 없이 '수능 개편'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안 공히 고교학점제와 어긋나게 설계하여 '국영수는 고3까지 해야 한다'는 통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래저래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참여정부의 어두운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정책을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내년에 연구를 위해 출국할 예정이어서 대선이 끝나고서는 홀가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대학입시와 고교교육에 대한 전략적·종합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복기가 되고있는지 의문이다.

절대로 1안/2안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교육부는 '전형 관리'라는 차원에서 수시에서 학종(학생부종합전형) 개선방안, 정시에서 변별력 확보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3안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앞에서 제시한 세가지 방안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고교학점제와 어긋난 부분을 교정해야 한다. 아직은 첫단추에 불과하기 때문에 간단히 새로 끼울 수 있다.


알림) 8월 21일 오전10시 국회 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더미래 연구소 주최로 수능개편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립니다. 필자가 발제자로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