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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흉기차'를 규율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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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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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사상운동> 10. 국가는 '흉기차'를 규율할 수 있는가?

저는 오랫동안 꾸준히 인터넷 여론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진보 커뮤니티와 보수 커뮤니티 양쪽에서 동시에 욕을 먹는 대상들이 나타나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입니다. 이때 무렵부터 '개독'이라는 모욕적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합니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보루가 붕괴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상이지요. 이후 2010년대에는 모욕의 대상에 언론('기레기')과 군 수뇌부('똥별')가 추가됩니다.

둘째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이주노동자와의 경쟁을 경험하는 건 주로 미숙련 노동자들인데, 청년들은 젊기 때문에 대체로 미숙련이며 그만큼 이주노동자와의 경쟁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습니다. 청년들이 인터넷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쏟아놓으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들의 인권의식 결핍과 편협한 인종주의를 비판하곤 하지요. 하지만 혐오의 이면에 '노동시장'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하층 노동시장에 저임금 노동력이 유입되는 것을 계속 방치한다면 소득주도 성장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고 트럼프 현상이나 브렉시트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겁니다.

셋째는 현대자동차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현대기아차의 약자를 '현기차'로 부르지 않고 '흉기차'로 부르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이승복) 수준의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급증합니다. 심지어 현대‧기아차와 전혀 관계없는 기사인데도 현대‧기아차를 욕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안전, 옵션질, 수출차/내수차 차별 등 한마디로 '국민을 호구로 본다'는 이유로 말이죠.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업체들이 옥시를 필두로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이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검찰에서 2012년에 고발된 사건을 4년이나 질질 끌다가 올해 총선 직후에야 결론을 내놓았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문제의 심각성으로 따지면 옥시보다 현대자동차가 더할 수도 있는데, 옥시에는 사회적 관심과 질타가 집중되는 반면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향이 없다는 점입니다. 옥시는 마침 외국계 기업인 반면 현대자동차는 '국민기업'이기 때문일까요?

현대자동차의 안전이나 품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병일씨입니다. 고용노동부로부터 자동차 정비 '명장' 칭호를 받은바 있는 그는 2014년 11월 현대자동차로부터 고소를 당합니다. 현대자동차의 에어백 미작동, 누수, 부식, 급발진 의혹 등에 대하여 9건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를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과 검찰은 수사 끝에 각각 2015년 7월과 12월에 그를 무혐의 처리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박병일씨가 제기한 의혹들이 명확히 해명되었을가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박병일씨는 에어백이 미작동하는 원인으로 에어백 센서의 방수 처리가 미흡할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하여 현대자동차는 명확한 실증적 반박은 하지 않은 채 2015년 8월 수출차와 내수차를 정면충돌시켜 에어백이 잘 작동함을 보여주는 이벤트로 답합니다.

이러던 와중에 2016년 1월 24일, MBC < 시사매거진 2580 >에 '공포의 운전대' 편이 방영됩니다. 운전대를 돌렸는데 바퀴가 돌아가지 않거나 또는 운전대를 돌리지 않아도 바퀴가 돌아가는, 아찔한 현상이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현대‧기아차 여러 모델에 장착된 조향장치인 MDPS(업계에서 일반적으로 EPS라고 불리는)의 문제, 특히 MDPS 내부의 '플렉시블 커플링'의 불량을 지목합니다.

여기에 대한 현대자동차 측의 대응은 신속했습니다. < 시사매거진 2580 >이 방영된 지 열흘 만인 2016년 2월 3일, 현대자동차는 해당 부품에 대한 무상수리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조치는 세가지 측면에서 정곡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첫째, '안전'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차는 공식적으로 이 조치가 안전 문제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조향장치 내부 부품(플렉시블 커플링) 마모에 따른 '소음 발생'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둘째, 리콜이 아니라 무상수리였습니다. 리콜은 해당 차종 소유자 전부에게 통지하여 의무적으로 수리‧교환해주는 것이고, 무상수리는 이상을 느끼고 조처해달라고 청하는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수리‧교환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리콜보다 무상수리에 훨씬 적은 경비가 들어갑니다. 안전 문제가 아니라 소음 문제이니 리콜은 불필요하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리콜을 피하기 위해 애써 안전문제임을 부정한 것일까요?...

셋째, < 시사매거진 2580 >에서 플렉시블 커플링뿐만 아니라 토크 센서의 불량 가능성도 지적하였는데 토크 센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의 미흡한 조처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국회가 특별위원회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현대차의 안전 문제를 다룰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13년 7월, SM엔터테인먼트가 JYJ 방송출연을 방해한 것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명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2013년 10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모 국회의원이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하려 했습니다.(이 의원은 2015년 JYJ법을 발의한 최민희 의원이 아닌 다른 의원입니다.) 새누리당은 이에 반대했고, 결국 이수만 회장의 국감 출석은 무산되었지요. 그런데 이 의원의 말에 따르면 이수만 회장의 증인 출석에 반대한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당에서도 별의별 의원들이 연락해서는 왜 이수만 회장을 부르려고 하냐며 말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회가 현대자동차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옥시보다, SM보다 훨씬 크고 힘센 현대자동차를 말입니다.

사실 자동차 안전 문제를 일차적으로 관리하게 되어있는 곳은 국회가 아니라 행정부입니다. 국토교통부는 현대자동차에게 리콜을 명령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체가 무상수리를 진행해도 이를 강제리콜로 전환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국토교통부는 잠잠합니다. '작은 세월호'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데도 이를 제지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무원들에게는 진정 영혼이 없는 것일까요?

과거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은 기업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적 개발독재의 특징은 재벌에게 '특혜'만 준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들을 강하게 '규율'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의 신규 공장을 인가할 때 생산물의 수출 비율을 의무화했고, 독과점에 의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강력한 소비자가격 통제를 시행했으며, 심지어 재벌들이 호화주택을 짓는 등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까지 중앙정보부를 통해 통제했습니다. 집권 이후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인상해서 1960년대 후반부터는 최고세율 35~45%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세력이 박정희 시대를 평가할 때 종종 놓치는 부분입니다. 독재정권이 일부 기업에게 특혜를 부여하고 정경유착을 형성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적잖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기업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강하게 '규율'하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지요.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정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박정희 정부의 정책의 독특함이 더욱 눈에 띕니다. 박정희 정부는 고교평준화, 그린벨트, 국민의료보험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소유권과 경영권을 강하게 제한하는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박정희는 보수 정치세력의 아이콘이지만, 박정희 정부가 도입한 고교평준화, 그린벨트, 국민의료보험 등을 현재 수호하려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입니다. 굉장한 아이러니지요. 현대 세계의 우파 독재정권들 가운데 경제·사회정책에 있어 박정희 정부에 필적할 사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부는 왜 이렇게 진보적인 정책들을 시행했을까요? 일반적인 해석은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겁니다. 냉전의 최전선이던 한반도는 일종의 '체제의 쇼윈도우' 구실을 했는데, 남북간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정당성이 취약한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면 좋든 싫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진보적 정책이 필요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현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대위원장)인 김종인씨는 1970년대 국민의료보험의 시초인 직장의료보험을 도입하려다가 정부내 반대에 부딪히자 '이런 정책을 펴지 않으면 하층민의 불만이 누적되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논거로 설득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부의 진보적 정책들은 체제경쟁이나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을까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마디로 '마지못해' 시행한 정책들이라는 거죠. 심지어 고교평준화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의 양자인 박지만씨를 위한 정책이었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해석들에는 나름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도 이러한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진보적 정책들이 '마지못해' 시행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놓칩니다.

첫째로 박정희의 자기정체성 자체가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1946년에서 1948년 사이 국군 내 남로당 비밀조직의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흔히들 그의 형이자 좌익 지도자이던 박상희가 1946년 대구 인민봉기(10‧1 사건) 와중에 경찰 총에 맞아 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말하자면 형이 죽은 충격으로 '홧김에' 그랬다는 거지요.

하지만 국군 내에서 촉망받는 엘리트이자 정보장교였던 박정희가 남로당의 단순한 끄나풀도 아닌 조직 책임자라는 위험천만한 역할을 했던 이유를 '홧김'이라는 식으로 풀이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보다는 그의 복합적인 자기정체성의 일부에 좌익적 신념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겠지요. 해방정국 당시 지식인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에 경도되었고 친형들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박상희가 구미의 명망있는 사회주의자였음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박정희는 친일 전력을 가진 독재자이지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면모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자기정체성을 보여주는 '독재+친일+민족주의+사회주의'라는 수식에서 '친일'을 빼면 김일성과 겹치고 말이죠.

여기서 또하나 주목할 점은 박상희가 죽은 뒤 그의 딸(곧 박정희의 조카)을 박정희가 김종필에게 소개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김종필도 서울대 재학시절 좌익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고향에서도 남로당 활동을 했으며 이에 대한 수사를 피하는 과정에서 도피성 입대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5.16 쿠데타 직후 미국 CIA가 '잠복해있는 좌익이 아니냐'며 가장 심각하게 의심한 대상은 박정희보다 김종필이었습니다. 5.16 이후 공화당 창당을 준비할 때 초기에 내부에서 유력하게 검토하던 당 이름은 공화당이 아니라 '사회노동당'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당시 한국일보에 보도되어 파란이 일어났었는데, 군사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훗날 여러 증언들을 통해 이 보도가 사실이었다는 정황들이 드러납니다.

박정희의 진보적 정책이 '마지못해' 시행된 것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두 번째 측면은, 현재 우리 국민의 통념 속에 존재하는 '공공성'의 원형이 바로 박정희 정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인의 공공성 개념 속에는 '국가권력이 공익 목적으로 취하는 강력하고 선제적인 조치'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공공성에 '복지 확대'만이 아니라 '공적 규율'이 포함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 '복지'는 인기가 높은 반면 '규율'은 씨가 말랐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1993) 정도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박정희 정부의 규율 정책은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의 고교 평준화나 전두환의 사교육 금지 등을 호의적으로 회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만약 지금 이러한 정책이 다시 시행된다면 격렬한 정치적 반대에 부딪힐 것이고 실현 여부를 낙관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교육 금지의 경우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정이 내려진 바도 있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고, 합법적인 정부권력의 테두리 안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위의 정책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의 권한을 시원스럽게 활용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이상하리만치 드뭅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내내 고입 사교육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외고를 중심으로 특목고를 계속 증설하고 민사고 등 6개 자사고의 개교를 승인했지요. 또한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특목고가 필요하다"(김진표 교육부총리)면서 고교체계 또는 선발방식의 개선 요구를 방관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부에서 아파트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이 대두됩니다. 민간 건설사의 경우 원가 공개를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견이 엇갈렸습니다만, 적어도 공기업의 경우는 충분히 공개 가능했지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이를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노무현 대통령)는 이유로 거부하고 조세·금융 중심의 대책으로 일관했고, 결국 아파트값 제어에 실패합니다.

2000년대 초반 비정규직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구조적인 고용불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 2001년 비정규직 비율이 26.9%였는데 2004년에는 37.0%로 단 3년만에 10% 이상 뜁니다. 그런데 2004~2007년 사이 의회 다수당이자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민생과 거리가 있는 이른바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에 매달리다가 실패하고서는, 2006년에 비정규직을 2년간 고용한 뒤 아무 제한없이 해고할 수 있게끔 법을 개정합니다.

뭔가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노무현 정부는 가장 근본적인 민생 문제인 고용·교육·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행정적‧정치적 권력을 사용할 의지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은 독재정권을 부정하기만 했을 뿐, 독재정권으로부터 긍정적 유산을 끌어내 활용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이지요. 우리는 재벌의 지배력 강화, 고용 불안정, 사교육비와 주거비 증가 등의 추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아닌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와중에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는 근본적인 재생산 위기에 봉착합니다. 무엇보다 출산율이 노무현 정부 시절 역대 최저치(2005년 1.08명)를 찍었고 이후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한채 세계 최하위권인 1.1~1.2명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의 주장은 단순한 친노 비판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진보적 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치세력은 친노 이외에 찾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범 진보진영 가운데 가장 강력한 상징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광범위한 열성적 지지집단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여의도에서 만나본 친노를 포함한 야당 정치인들의 사고는 노무현 정부를 능가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사교육비, 주거비 등의 민생 핵심 현안과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되는,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아이디어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야당이 향후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박정희 정부가 활용한 당근/채찍, 즉 특혜/규율의 양동작전은 이후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당시의 특혜는 수출금융 지원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격이었던 반면, 지금의 특혜는 연구개발 투자에 상응한 세금감면처럼 보다 간접적인 방식입니다. 예전과 같은 강력한 정부주도가 불가능한 여건에서 특혜는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지요.

그런데 '규율'은 어디로 갔을까요?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이 정상적인 선진국의 길을 걸었다면 '특혜'가 진화한 것처럼 '규율'도 진화해야 마땅했는데 말이죠. 즉 규율의 목표가 기업들이 수출에 총력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데에서 벗어나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했다는 겁니다. '선진화'를 성장과 등치시키던 데에서 벗어나 공정성, 투명성, 인권, 건강 등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특혜'가 진화한 반면 '규율'은 멸종하고 맙니다.

규율이 멸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민주화세력 전체가 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들 수 있겠고, 아울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가 불운하게도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자율-규제' 프레임은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규제는 나쁜 것, 자율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인데, 일단 이 프레임 안에 들어서면 반박이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누구에게든 "규제가 좋아, 자율이 좋아?" 라고 물어보면 자율이 좋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문제는 정부가 '규제'를 포기하는 순간, 국민의 안위를 지켜줄 '규율'이 함께 포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공무원은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월호 사건을 공권력의 기능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이중의 실패'가 눈에 띕니다. 선박 운항에 대한 관리감독의 실패, 그리고 해경의 구조활동 실패. 이 두가지 실패가 겹치는 교집합에서 대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실패의 근원에는 모두 '영혼을 잃어버린 공무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나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는 산업의 발달을 저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규제는 산업과 기술의 발전 방향을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orientation)하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도 가장 강력하고 선제적인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정책을 통해 저공해 자동차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선도적인 전기차 제작업체인 테슬라가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다른 예로 스웨덴은 1997년 교통사고 사망자를 제로로 만든다는 '비전 제로'(Vision Zero) 법을 통과시키고 이후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하여 교통사고 사망률을 OECD 최저로 낮추었습니다. 이 정책과 연계하여 오랫동안 안전의 대명사로 알려져온 볼보자동차는 2020년까지 자사의 신형 자동차에 의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람이 전혀 없도록 만들겠다는 '비전 202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탑승자의 안전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요, 자동차의 진로에 보행자, 자전거, 유모차, 동물 등이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면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 정지하는 기술이 거의 완성 단계라고 합니다.

캘리포니아주 배기가스 규제와 스웨덴의 비전 제로 정책 등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동시에 기업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요. '규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한다'는 단순논리는 여기서 근거를 잃습니다. 결국 '규제냐 자율이냐'가 아니라 '좋은 규제냐 나쁜 규제냐', 즉 무엇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규제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볼보자동차 승용차 부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요. 2010년 볼보를 인수한 업체는 중국의 지리(Geely)자동차였고 이로서 지리자동차는 향후 자사의 차량에 볼보의 안전기술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인수대금은 2조원 가량이었고 이후 투자한 돈까지 더하면 총 3조원 가량이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2014년 현대자동차는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부지를 10조에 낙찰받습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자동차 안전 기술을 100% 인수하는 데 필요한 돈의 3배 이상을 부동산 투자에 사용한 것입니다.

이때 정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장 높은 입찰가를 부른 현대자동차에 한국전력 부지를 매각했을 뿐입니다. 규정과 절차에 합당한 업무 처리 방식이지요.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인 일이었을까요? 박정희 정부라면 이를 내버려 두었을까요?... 현대자동차의 안전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대자동차의 안전도를 높이도록 유도하기는 커녕,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어려운 (심지어 이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는) 사업에 10조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승인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규율을 포기하고 자율을 앞세운 정부의 직무유기입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자동차 안전에 대한 규율을 담당하는 기구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NHTSA(전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NHTSA와 유사한 기구를 만든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영혼을 잃어버린 공무원들이 담당하게 될 테니까 말이죠. 국토교통부의 기능부전이 새로운 기구에서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결국 두 가지 방향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민간의 힘을 조직하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 정부기구인 NHTSA 이외에도 민간기구로서 보험회사들의 재정지원을 받는 IIHS(고속도로 안전 보험협회)가 자동차 충돌실험을 비롯한 각종 연구와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여 시민의 안전을 지킴과 동시에 자동차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에도 보험회사와 소비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민간기구를 구성하여 자동차 안전을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하나의 해법은 국회의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국회는 상임위별로 피감 기관에 대하여 상당히 높은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를 국회가 나서 개선하는 것이 상당 수준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야당이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를 다룰 수 있을지 여부가 한국사회 선진화의 시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 직무유기 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헬조선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1위가 '정부 불신'(46%)입니다.(2015년 9월 17일 JTBC <탐사플러스> 보도) 이런 점에서 세월호, 메르스, 가습기살균제,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 등이 일맥상통합니다. 공익을 위한 정부의 규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더욱 약화되고 심지어 타락했습니다. 공적 규율을 회복하고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재장착하려면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정희 정부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이때 '선진화'의 의미를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안전, 공정함, 삶의 질과 같은 새로운 가치로 재정의하는 일종의 사상운동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 박정희 정부의 기업에 대한 '규율'에 대해서는 연세대 행정학과 양재진 교수의 논문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동서연구> 24권 3호, 2012)에 힘입은 바 큽니다.

<나홀로 사상운동>

1. 계파인듯 계파아닌 계파같은 친노

2. 새정치 혁신위, '답정너'를 넘어라!

3. 일베 무시는 청년 무지

4. 복지, 486의 알리바이

5. 청년이 최우선이다, 불쌍해서가 아니다

6. 탈스펙의 정치경제학

7. 응답하라 손학규

8. 안철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9. 국정교과서의 대안은 검정교과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