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마이너 Headshot

수화통역사·페미니스트·청소담당자가 말하는 그때 그 광장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당시 광장을 지켰던 수화통역사, 페미니스트를 비롯해 청결한 광장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청소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재조명하는 시간이 열렸다.

2016년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23차례 진행되며 연인원 17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촛불집회는 국정 농단 사태로 시작했지만 한국사회의 여러 의제를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했고, 이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조명되기도 했다.

16일 서울시청 본관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7 서울 인권컨퍼런스' 특별세션1에선 '광장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주제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해 국내외 다양한 참가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고,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박미애 수화통역사 "보이지 않았을 뿐... 사회 이슈에 농인들 참여하지 않은 적 없어"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활동가인 박미애 수화통역사는 촛불집회 초기 수화통역지원팀을 만들어 광장의 음성언어를 농인(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언어(아래 수어)로 통역하는 역할을 했다.

the

16일 서울시청 본관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7 서울 인권컨퍼런스' 특별세션1에선 '광장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주제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해 국내외 다양한 참가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수화통역지원팀을 꾸려 수화통역을 한 박미애 수화통역사가 발표하고 있다.

1차 집회 당시 수화통역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수화통역사들은 주최 측에 먼저 연락해 무대 수화통역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최 측이 수화통역의 필요를 잘 인지하지 못한 탓에 초반엔 끊임없이 주최 측과 싸우며 의견 조율을 해야만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박 통역사는 당시를 회상했다.

3차 때는 카메라 연결잭이 끊어져 수화통역이 화면에 송출되지 못하기도 했고, 5차 때는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팀 인원이 많아 통역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수화통역을 위해선 표정과 손짓이 잘 보이도록 별도 조명이 필요하지만 초기엔 기본 조명조차 지원되지 않아 수화통역사들이 핸드폰 조명으로 자체 조명을 만들어야 했다. 수화통역지원팀은 매번 촛불집회가 끝나면 농인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주최 측에 전달했다. 그렇게 마침내 수화통역 자체 조명이 생기고, 후반부엔 주최 측으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기도 했다. 늘 화면 한 귀퉁이 '조그만' 화면으로만 있던 수화통역창이 가수 공연 도중 스크린 절반 크기로 확장된 것이다.

박 통역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수자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냥 그들과 함께했던 경험이 너무 적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수화통역은 무대 통역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수화통역사들은 농인들과 함께 행진하며 광장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통역했다. 경찰이 왜 버스 위에 있는지, 버스에 붙여진 꽃스티커 의미는 무엇인지를 통역하고,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와 함성을 통역했다. 그들의 통역으로 농인들도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었다. 수화통역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농인들의 참여도 늘어났다. 그리고 12월 31일 마침내 농인 당사자인 김세식 씨가 자유 발언 시간에 무대에 올라 수어로 "저 작은 수화창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인도 이 사회의 시민이고 이 변화의 시간에 함께하는 주체임을 선언한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박 통역사는 농인과 수화통역사가 오래전부터 광장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이 사회 시민이었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과거 미선이·효순이 사건, 광우병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이 사회 시민운동에 농인들이 참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우리가 자세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것은 아닐까"라면서 "제발 우리를 이 '작은 사각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당당하게 이들의 언어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쳤다.

- 나영 "소수자 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되어야"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역사적 전환의 현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단지 한 명의 여성으로, 여성의 실패로 환원되면서 촛불집회가 여성혐오의 성격을 띠었던 것에 대해 지적했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에서 드러난 파행과 적폐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가부장 정치 권력의 카르텔이 초래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문제는 여성 속성으로 쉽게 치환되어 여성 일반의 정치적 능력과 시민성 자체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면서 "실제 여성들은 집회 현장에서 숱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으며, 여성의 신체와 속성을 가지고 풍자하는 전시물들이 광장과 온라인에서 넘쳐났다"고 말했다.

the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이에 대항해 여성들은 3차 때부터 여성혐오를 만드는 집회를 하지 말자며 '페미존'을 만들어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성소수자 혐오는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수많은 단체가 "우리들의 행동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는 것'이 아니라 '해일이 몰려올 때, 대피 신호를 쏘아 올리고 구명보트를 띄우고, 해일 속으로 뛰어들어 소외되고 차별받아 뒤처진 마지막 한 명까지 구하는 것'"이라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현장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역사가 삭제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영향 덕분인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이를 선언하는 현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낙태죄 폐지에 대해선 나중으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선 수많은 여성 장관이 탄생하고 있으나, 박근혜가 여성이었다고 여성의 정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여성의 정치는 여성이 대표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이 바뀌는 것에 있다"면서 "그렇기에 차별에 대응하는 구체적 제도와 방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에도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2012년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밝혔으나 우파 개신교 세력의 압박으로 오히려 현재 후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우리'라고 말할 때 그 '우리는 누구라고 상상'하는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공의 장이 평등하게 보장되는지가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면서 "촛불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를 '우리의 민주주의'로 만들고자 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촛불 집회 한 번 하면 쓰레기 60톤... 새벽까지 치웠다"

이날 컨퍼런스에선 '깨끗한 촛불광장'을 만들기 위해 23차례의 촛불집회 동안 밤낮 열심히 청소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전해졌다.

김재덕 서울시 종로구 청소행정과 주무관은 "촛불 집회 시 하루 발생하는 쓰레기양이 60톤 이상이었다"면서 "건설현장에서 커다란 덤프트럭 한 대가 20톤인데 그 세배 분량이다. 타다 남은 촛불, 수많은 전단, 경찰이 먹은 일회용 도시락 등을 우리가 밤새 치웠다"고 전했다.

김 주무관은 "1, 2차 집회 때, 시작 3시간 전 200리터 쓰레기봉투 100여 개를 설치해두었지만 역부족이었다"면서 "한 명이 버리기 시작하면 그 자리는 쓰레기장이 됐다. 그래서 2차 집회 후 긴급회의를 열어 6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종량제 봉투를 나눠준 뒤 쓰레기 담아 달라고 요청하며 청소를 병행했다. 그때부터 같이 정리하고 치워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이어 "이후 촛불집회가 아닌 다른 집회에서도 기본적인 정리와 청소가 이뤄지는 것 같다"며 깨끗해진 집회 문화를 촛불집회의 또 다른 성과로 꼽기도 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