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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죽였다? 아니다. 이 나라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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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전북 전주에서 한 아버지가 열일곱 살 발달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투신해 숨졌다.

사흘 뒤인 22일, 이번엔 경기도 여주에서 어머니가 스물여덟의 지적장애 1급의 아들을 목 졸라 죽였다. 아들은 지적장애에 뇌병변장애가 있는 중증중복장애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자 병원에 수면제를 사러 갔다. 하지만 병원 처방전이 없어 구매에 실패하면서 결국 경찰에 자수했다. 아들은 성남에 있는 특수학교 졸업 후 복지관 같은 기관을 이용하긴 했지만, 활동보조서비스와 같은 돌봄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어머니의 돌봄에 의지해 살았다.

가족이 있기에, 아버지가 회사에 다녀 돈을 벌기에,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가족이 스무 살 넘은 아들의 모든 돌봄과 삶을 책임져야 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 숨 막히는 삶이 어머니를 사지로 밀어 넣었던 건 아닐까.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4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는 가족이 죽인 게 아니라, 장애인을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나라의 복지가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이는 박근혜 복지의 총체적 문란의 결과이고, 그 직접적 살인의 실행자는 '힘이 되는 평생 친구'라고 떠들어대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면서 "가족에게마저 살해당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개인과 가족의 부담으로만 존재하는 '기생적 소비계층'이고, '폐기물'로 존재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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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4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지난 22일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장애인 사망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뒤 사망한 장애인에 대한 추모식에서 헌화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죽이는 일, 혹은 '같이 죽자'는 말. 장애인의 삶엔 하나씩 박혀있는 에피소드였다. 그만큼 흔했다.

"내 어릴 때를 생각해봤습니다. 열 살 즈음에 내 아버지도 술 잡수시면 다음에 죽을 때 너도 같이 죽어야 한다,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어릴 때 그 말 듣기가 참 싫었어요. 그 말 들은 지 50년이 넘었네요. 그런데 여전히 부모가 장애인 자식 죽이는 '개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도 참고 또 참으며 세상 괜찮아지겠지, 얼마나 참으셨겠습니까. 어머니가 그 자식을 그러셨을 때, 그 자리에서 어떤 마음이셨겠습니까. 정말 너무 비통합니다. 정부는 자기네들 도둑질 해먹는 건 그리도 잘 해먹으면서, 우리는 이 차가운 바닥에서 울어야 하는, 이 개 같은 세상을 어떻게 이리도 못 바꾼단 말입니까."
(박명애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회장)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회장은 "이건 울어서 될 일이 아니고 이를 박박 갈아야 한다. 우리 아니고는 이 세상 바꿀 사람 없지 않나."라면서 "정말 힘들게 사는 부모님들, 장애인들 위한 편한 세상, 우리가 함께 만들자. 악착스럽게, 질기게 만들자."라고 외쳤다.

이런 일을 막고자 지난해 11월 발달장애인법이 제정, 시행되었다. 그러나 시행 후 1년이 지났지만 정작 예산이 투여되지 않아 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김수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은 "발달장애인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정성과 노력으로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가족으로서는 버겁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에 봉착하고 만다."면서 "그저 발달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지지를 받으며 살고 싶은데, 대한민국에선 불가능한가"라고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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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4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지난 22일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장애인 사망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장애인은 그렇게 폐만 끼치는 존재인가.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시선으로 그 부모의 고통에 동정과 연민을 표한다. 최용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그러한 사회의 시선을 경계했다. 최 공동대표는 "이건 사람을 죽인 살인행위다. 그 안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침해당하고 훼손됐다. 장애인이기에, 죽여도 동정받는 현실이란 게 참담하다."라면서 "더는 가족에게 책임 떠넘기고, 그 안에서 죽임을 당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전장연은 광화문역에서 1556일째 농성 중이다. 장애인이 장애등급이 아닌, 필요한 만큼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가족과 상관없이 자신이 빈곤하다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지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더는 '예산 없다'는 이야기 믿지 않는다. 자기네들 약 사는데 다 쓰고, 비선 실세가 유용하고, 삼성 족벌 운영하는데 다 썼던 것 아닌가."라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국정농단에 분노했다. 이어 "그것은 개인이 유용할 돈이 아니라 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부양의무제 폐지하는데 써야 할 돈이었다"라면서 "이번 주 토요일에도 촛불 들고 국가 책임을 묻는 행동에 나서자."라고 외쳤다.

이들은 또 내년도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선 내년도 예산을 심사 중이다. 복지부는 장애인 생존의 문제가 걸린 장애인 활동보조, 장애인연금 예산은 삭감하고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은 대폭 증액시킨 채 공을 국회에 넘겼다.

전장연은 "아무리 제도가 변해도 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달장애인법이 이를 증명하지 않나"라면서 "국회는 지금 심의하는 중증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대폭 증액하여 통과시켜야 한다. 그것이 국회가 할 일이며, 박근혜 살인정권과 동반자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국회에 경고했다. 이어 "박근혜 퇴진이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가 그 디딤돌이 될 것"이라면서 "전장연은 전력으로 이 죽음의 책임자들인 박근혜와 정진엽 복지부 장관에게 그 죄과를 묻고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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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뒤 사망한 장애인에 대한 추모식에서 헌화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