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마이너 Headshot

'박근혜는 발달장애' 발언이 보여준 무지함 | 박근혜는 '확신범'이지 '발달장애'가 아니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1
Gettyimage/이매진스
인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퇴진'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는 한편으로, 일각에선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미 "근본도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권력을 넘겨줬다"라는 말로 구설수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샤머니즘' 운운하며 민간무속신앙에 대한 비하도 만만치 않게 퍼져나가고 있다. 확실히, 현재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분노와 조롱의 한편에는 소수자에 대한 비하/혐오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정서의 한 가운데에는 '발달장애/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도 존재한다. 특히, 소위 '심리학자'라는 자들이 박근혜를 정신장애 또는 발달장애라고 단정 지으며, 자신의 장애혐오 정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지난달 2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접한 박근혜가 극도의 불안과 의존 심리를 갖게 되었고, 최순실 일가와 보수세력이 그 점을 이용해 '정신박약자 박근혜'를 포로로 삼아 농락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여기에 맞장구라도 치는 듯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4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연령은 17세...발달장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언론들은 무슨 대단한 학문적 분석이라도 나온 양 일제히 그의 발언을 따와 '우라까이' 기사를 쏟아냈다.

2016-11-18-1479450634-4062845-147943448898.jpg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 (사진 출처: 김어준의 파파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런 류의 발언을 우리는 3년 전에도 접한 바 있다.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내란음모혐의가 논란이 되었던 2013년 9월, 진보논객 진중권은 "정치적 발달장애를 앓는 일부 주사파 정치 광신도들이 80년대의 남조선혁명 판타지에 빠져 집단으로 자위를 하다가 들통난 사건"이라고 했다. 이 당시에도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은 '명백한 장애비하 발언'이라고 크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이 발언을 한 이들은 '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냐'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말을 '웃자고 한 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이들 '전문가'(?)들의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무슨 대단한 학문적 논리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런 류의 발언은 농담으로 치더라도 저급한 삼류 농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비판/비난하기 위해 특정한 인구집단을 비유로 들었다. 이 비유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비판/비난의 대상과 그 인구집단이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저 '말 같지 않은 말'이거나, 비유대상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 선입견과 비난/비판의 대상을 뒤섞어 버린 데 지나지 않는다. 저들의 발언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저들의 비유에 '발달장애' 대신 '흑인'을 대입해 보자. "박근혜의 정신상태는 흑인 수준"이라고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백인/흑인/황인의 차이는 피부색의 차이지 지적/정신적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점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때에는 이런 식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도 했다. 흑인은 반문명적이며, 이성이 아니라 자연적 본능에만 충실하며, 따라서 지적 수준도 다른 인종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고상한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지독한 근대적 편견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누군가를 비판/비난하기 위한 비유로서 '흑인'을 거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흑인 혐오이자 차별이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다. 그 권력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그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 권력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인(私人)에게 마음대로 위탁했고, 그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초법적으로 행사했다. 그것은 명백하고 중대한 범법행위다. 그런 일을 저지른 박근혜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말대로)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다. 그런데 김태형, 황상민 같은 자들은 갑자기 이 사태의 원인을 박근혜의 '정신적 미성숙함'에서 찾으려 한다. 대체 어떤 발달장애인이 박근혜처럼 권력을 사적으로 휘둘러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기밀을 사인에게 유출하고, 사인의 이익을 위해 복종하지 않는다고 공무원을 겁박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그런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고, 아마 전 세계를 뒤져도 그런 사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발달장애'라고 말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은 '잠재적 범죄집단'이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황상민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과 비교하면 (박 대통령의) 실제 정신 연령은 17~18세 정도"라며 "더 이상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라고 했다. 연령기준까지 적시하니 무슨 심리학적 근거라도 있는 것 같지만, 이는 자신의 무지함을 폭로하는 것에 불과하다. 발달장애 분류에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가 포함되는데, 대부분이 지적장애다(보건복지부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수는 약 17만 명, 자폐성장애인 수는 약 1만 명). 지독히 의학적 기준에 따르는 정부의 장애판정 기준으로 봐도, 지적장애 1급은 정신연령 2~3세 수준, 2급은 3~7세 수준, 3급은 8~12세 수준으로 본다(고명균,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이해」,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2015.09). 이런 보수적인 기준으로만 봐도 정신연령 17세를 발달장애라고 보는 것은 대단한 무리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17세면 준성인이다. 그러니 이건 장애혐오일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국정파괴의 주범 박근혜를 반드시 청와대에서 끌어내려야만 한다. 그런데 무슨 힘으로? 바로 그동안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권리를 박탈당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자 할 때에만 그것은 가능하다. '전문가'라는 완장을 찬 이들이 소수자를 향해 내뱉는 조롱과 비하는 박근혜 퇴진 투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