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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있는 사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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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이야기] 안동에서 발생했다는 장애인 '묻지 마 폭행' 사건 취재 중 만난 반전

지난 22일, 제보가 들어왔다. 안동에서 장애인이 '묻지 마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1급 장애인 네 명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남성이 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이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했단다. 얼마 전 일본에서 장애인 혐오에서 비롯된 살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던 터라, '설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동안 감춰져 왔던 한국의 장애인 혐오 범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달떠서 열심히 취재했다.

피해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가장 많이 폭행당한 사람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남성에게 두들겨 맞아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한쪽 눈 시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온 사진에서도 폭행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멍든 눈이 잔뜩 부어올라 잘 떠지지 않는듯했고, 목 아래쪽에도 손톱에 움푹 팬 붉은 상처가 선연했다. 그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였다. 분노가 치밀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왜 이렇게 맞아야 했는가.

그런데 취재 도중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가해자가 때리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장애인 혐오 범죄'라면 욕설이나 비하 등 혐오 발언이 따르기 마련일 텐데, 격하게 흥분한 상태에서 어떻게 욕 한마디가 없었을까. 이렇게 되면 '장애인 혐오' 범죄라고 사건을 소개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가해자가 장애인을 '혐오'해서 폭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가해자를 조사했다는 형사와 통화를 했다. 조사 과정에서 그가 대체 왜 장애인을 때렸는지 이유를 들으면 확실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취재 도중 마주한 '대 반전'

의문은 이때 풀렸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농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흥분된 싸움판에서도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비장애인이 장애인 혐오 감정에 똘똘 뭉쳐 아무 이유 없이 장애인을 마구 폭행했다'는 기사의 '야마'(기사의 주제나 핵심을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도 무너져내렸다.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 A 씨는 몇 달 전부터 누군가 자기 차에 해코지를 했다고 주장했다. 때로는 담배꽁초가, 또 어떤 때는 우유 팩이 차 위에 올려져 있었다. A 씨는 담배꽁초를 집어다 버리고, 쏟아진 우유를 닦아냈다. 그러나 그의 차에 쓰레기는 계속 버려졌고, 누군가 일부러 낸듯한 흠집도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A 씨는 누가 자기를 이렇게 계속 괴롭히는지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녔다고 한다. 듣지 못하는 그에게 시각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A 씨 눈에,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 공터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대부분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밤에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종종, 그 사람들과 A 씨는 눈이 마주쳤다. A 씨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휠체어를 탄 무리'가 자신이 농인이라서 조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차를 해코지하는 범인이 바로 저들일 것이라는 확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A 씨는 17일 밤, 어김없이 모여서 자신을 '비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느냐'고 따져 물었다. 수화를 사용해서. 그러나 그의 수화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웃었고, A 씨는 또 나를 보며 비웃는다고 생각해 멱살잡이를 시작했다.

오직 피해자뿐인 사건... 가해자는 누굴까

담당 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할 수 없이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피해자들은 처음에 제보를 할 때부터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아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처음에 가해자 신변을 확보하지 못해 시간이 흘렀을 때,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같은 단지에 산다는 것도 몰라 경찰이 가해자 신원을 파악할 때까지 발만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A씨를 이전부터 '조롱'해왔다면, 바로 지목을 하고 법적 조치에 들어갔을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들은 경찰이 제대로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아 언제 또 폭행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조롱'을 할 수 있는 강자의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약자의 감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오직 피해자만 있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내 바로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욕해도 듣지 못하는 농인으로 살아온 A 씨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는 살면서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청인을 얼마나 많이 만나봤을까. 음성 언어가 소통을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그는 늘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기분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사회에서 늘 약자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더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누가 나를 또 해코지하면 어쩌나, 내가 또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쩌나. 이 학습된 두려움이 빚은 오해가 결국 폭행으로 번졌다. 이 사건을 더듬어 가다 보니, 진정한 가해자의 윤곽이 느껴졌다. 나와 다르면, 나보다 약하면 함부로 대하는 사회, 그리고 이 경향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자아를 실어왔던 나의 얼굴이었다.

최한별 기자 hbchoi1216@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