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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재소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게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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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1일, 바스토이 교도소로 가는 페리

노르웨이 바스토이 섬 - "교도소?" 나는 기차를 타고 배까지 와서 갑판원 두 명에게 물었다.

"네." 둘 중 한 명이 추워서 양손을 비비며 대답했다. 그는 오만한 푸른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미안합니다, 남성 전용이에요." 그는 웃었다. "맞게 찾아 오셨습니다, 타세요."

돛대 위를 보니 박제된 백조가 달려 있었다.

"몇 년 전에 얼음 덩어리 속에 있는 걸 발견했어요." 다른 갑판원이 말했다. 그는 검은 색 스키 모자를 썼다. 주름진 얼굴은 친절해 보였다.

"으스스한 모습인데요."

"그래요? 우리 마스코트죠. 범죄자가 무섭나요?" 그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그가 말했다. "우린 범죄자들이에요." 나는 그의 눈을 부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농담일까?

"정말이에요, 우린 범죄자들이에요. 무섭나요?"

"내가 왜 무서워해야 되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난 비고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정말로 재소자였다. 노르웨이의 최고형인 21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지만 내년엔 출소할 가능성이 컸다.

다른 갑판원 카토는 범죄로 1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지만 자신은 무죄라고 우겼다. 카토와 비고는 나를 대기실로 데려가 벽에 붙은 하루 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6시부터 정오까지 일해요. 그리고 교도소로 돌아가서 쉬거나 운동을 하죠. 이리 오세요, 선장님 만나 보고 싶어요? 선장은 죄수가 아니에요. 이 배에서 죄수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죠."

나는 위층에서 건장한 선장과 악수를 했다.

"이 범죄자들과 이야기했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서운 범죄자들'이라는 장난스러운 놀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기선 무서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그걸 아는 것 같았다.

배가 출항하자 나는 바스토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향해 뻗은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회색 바다 위에 모여 있었다. 배 안의 좁은 좌석 구역에서 카토가 내 옆에 앉아 TV를 켜고 히스토리 채널로 돌렸다.

"페이스북 하시나요?" 그가 물었다.

"페이스북이랑 인터넷을 해도 돼요?" 내가 되물었다.

"저기선 못해요." 그는 소나무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집에 다녀 올 때는 할 수 있죠." 나는 쪽지에 내 이름을 적어 주었다. 내가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머리 위에 가느다란 푸른 하늘의 선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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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토이 교도소에서 마차를 타고 있는 재소자. 2011년 4월 11일

"사람들은 바스토이를 여름 캠프라고 해요." 배에서 내리려고 선실을 나서는 내게 비고가 말했다. 그는 거의 나를 나무라다시피 하고 있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저긴 교도소예요. 내 말 믿어요. 우리의 삶은 멈췄어요. 얼어붙었어요."

나는 백조를 가리켰다. "당신들 마스코트처럼 얼어붙었군요. 아름다운 섬에 있긴 하지만."

비고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토로 돌아간다!" 그가 다음 항해를 준비하며 카토에게 말했다. 새로 온 영혼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 저승으로 가는 현대의 카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승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비고의 말이 맞았다. 정말 여름 캠프 같아 보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위로 얼룩덜룩한 낙엽이 떨어졌다(그렇다, 재소자들이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마차가 지나갔다. 칙칙한 노란 색에 녹색 테두리를 두르고 빨간 지붕을 얹은 작은 집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양과 소가 있었지만 울타리나 철조망은 없었다.

바스토이는 개방형 교도소다. 개방형 교도소는 핀란드에서 1930년에 만들어진 개념이며, 이제는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표준적이다. 재소자들이 복역 중에 매일 출근하며 외부 직업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노르웨이 교도소 30%는 개방형이고, 악명 높은 소년원이었다가 1982년에 교도소로 바뀐 바스토이는 대표적 개방형 교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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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관련 범죄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에드벤(38세)이 바스토이 교도소의 목재 오두막 주방 앞에 서 있다. 2011년 4월 11일.

미소를 띈 경찰이 작은 노란 밴으로 나를 오두막까지 데려다 주었다. 난 전화기를 맡겨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교도소' 같은 점은 그게 처음이었다. 바스토이의 지사 톰(소장이나 감독관이 아니라 지사였다)은 케빈 코스트너를 닮았다. 그는 내게 커피를 권했고, 우리는 꽃무늬 장식과 알로에 화분이 있는 그의 사무실에 함께 앉았다.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났고 잉걸불의 향도 났다. 뉴 잉글랜드의 옛스러운 민박집 같은 곳이었다.

"그건 효과가 없어요. 그걸 유지하는 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톰이 단호히 말했다. 그는 이 개방형 교도소 운영을 맡기 전에 22년간 근무했던 전통적인 교도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톰이 말을 계속하는 가운데 창가에서 파리가 유란하게 붕붕거렸다.

"나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어요. 생각이 금방 바뀌었습니다. 개방형 교도소가 많아져야 해요. 거의 모든 교도소가 개방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수를 받고 있지만, 전부 다 받지는 못해요." 출소까지 남은 기간이 3년 이하인 전국의 수감자들은 바스토이 같은 개방형 교도소로 옮겨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이 섬에는 남성 수감자가 약 115명, 관리 직원은 70명 이상이며 대기 명단에 30명 정도가 올라 있다.

"'아, 여긴 만만한 교도소구나. 괜찮은 죄수들을 골라서 여름 캠프 교도소에 넣는구나.'라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죄수들은 중범죄자들입니다. 마약, 폭력사범이에요. 그리고 다른 교도소에서 문제를 일으켰다가도 여기에 와서는 괜찮아진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저 사람이 당신이 다루기 힘들다고 했던 죄수가 맞아?'라고 묻죠.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됩니다. 인간처럼 대하면 인간처럼 행동해요."

그는 창문을 열어 파리를 내보냈다.

"산책하러 가시죠."

우리는 숲을 걸었다. 풀을 뜯는 말들, 새들이 짝짓기하는 곳, 온실, 점심을 요리할 수 있는 바비큐 화덕을 지났다. 죄수들은 통나무 집 같은 집에서 함께 산다. 장작이 타는 맛있는 냄새가 감돌았고, 남아프리카의 로벤 섬[주: 정치범을 수용하는 섬]이 떠올랐다. 바스토이는 로벤 섬과는 정반대였다. 어둡고 사악한 쌍둥이가 아니라 지옥 같은 교도소 섬 로벤의 인도적인 버전이었다.

"교도소가 아니라 섬을 운영하는 겁니다. 농사가 우리 철학의 큰 부분을 차지해요. 우리는 인도적이고 생태적이에요. 동물들도 사회적 기능을 합니다. 공감을 가르치죠. 모두 농사일을 합니다."

이곳은 식량의 25% 정도를 직접 기르는 자연 보호 구역이다. 교통수단은 거의 전기로 움직이고, 모든 것을 재활용한다.

"이 섬에 사시나요?" 내가 물었다.

"매일 배로 출퇴근해요. 정말 좋습니다. 오슬로에서 운전하지 않아도 돼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도시 출신이거든요. 이 곳, 이런 라이프스타일 덕택에 내 삶이 정말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재소자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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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마약 범죄로 16년 6개월 형을 받은 재소자가 바스토이 교도소의 집 앞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2011년 4월 11일

톰은 놋쇠 샹들리에로 장식된 목조 교회를 보여주었다. "노르웨이는 세속적이기 때문에 여기는 문화적 공간에 가깝습니다. 목사는 옛날식 사제보다는 세라피스트에 더 가까워요." 톰은 환한 슈마켓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프리미엄 카카오 초콜릿과 알로에 베라 주스를 파는 곳이었다.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빨간 공중전화 부스들이 있었다. 그러나 톰은 모든 교도소에서 휴대 전화와 인터넷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려울 게 뭐가 있죠? 인터넷이나 전화로는 아무도 죽일 수 없어요."

나는 오명과 사회 재진입에 대해 물었다.

"노르웨이에선 출소했으면 출소한 겁니다. 큰 오명이 따르지 않아요. 내가 아는 사람 하나는 18년 동안 복역한 뒤 지금 내 이웃에 살아요. 평범한 노인이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이런 경우는 흔합니다. 내 친구 중에는 전과자가 많아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아주 너그럽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묘해요. 우리가 늘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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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토이 교도소의 낡은 공중전화 부스. 이 섬의 유산의 일부이며 재소자들이 외부에 전화를 걸 때 사용한다. 2011년 4월 11일

그건 절제된 표현이다. 여기는 약탈하는 바이킹들과 북유럽 영웅 전설의 땅이다. 내가 다른 날에 방문했던 오슬로 시청 바깥의 나무 프리즈에는 영웅 전설이 조각되어 있었다. 영웅 전설은 폭력, 살인, 질투, 복수를 담은 긴 이야기다. 노르웨이의 과거 깊은 곳 어디에선가 사회적 조류가 바뀌었고 평화와 용서의 문화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면 매혹적이다.

점심을 먹으며 톰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보수'당은 다른 곳에서는 진보적으로 간주될 것이긴 하지만, 교정 정책, 최근 노르웨이의 진보적 시스템과 가벼운 형벌 접근을 위협하는 이민자 유입과 외국인 혐오의 증가와 보수적 정치에 대해 좌파와 우파가 전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보수가 이끄는 정부의 일부인 진보당은 이민에 반대하는데, '네이빙'에 대한 반발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빙은 복지에 기대 사는 것으로, NAV는 노르웨이 노동과 복지 행정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 지역 신문은 노르웨이 인 80%가 더 엄격한 처벌을 원한다고 주장했고, 2010년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가 처벌이 일반적으로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매체에도 책임이 있어요." 톰은 노르웨이 브라운 치즈가 든 통곡물 토스트를 베어물며 말했다. "미국 TV 쇼에서는 엄격한 교도소와 '범죄를 엄격하게 다루는' 걸 이야기하죠. 그게 여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변화가 시작됐어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나쁜 매체들은 우리가 미국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었어요. 특히 선거에서요. 정치 연설에서, 세속적인 국가가 성경을 인용하는 것들? 세라 페일린? 사람들은 웃는 동시에 울고 있어요. 이게 우리가 따라하고 싶은 나라라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매체가 문제를 일으키고 또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충격적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공포의 문화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에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경험과 머독의 매체에 대해 말했다.

"네." 톰도 동의했다. "파티에 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모든 - 상스러운 말을 써서 미안합니다 - 얼간이들은 범죄가 실제보다 많다고 우겨요. 통계를 보면 두려워할 것은 전혀 없는데요."

나는 독일의 연구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잠시 나와서 집을 방문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바로 그거죠."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재소자들이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극소수입니다. 한두 건의 예외에 기반해 사법 시스템 전체를 구축할 수는 없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매년 이웃들을 내보낸다고 말합니다. 시한폭탄으로 만들어 내보내길 원합니까?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면 좋겠어요? 이것 봐요." 그는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뉴욕 주 아티카의 교도소장에 대한 영화 보셨나요?"

최근 핀란드에서 나온 다큐멘터리는 아티카의 전 교도소장이 재활에 초점을 맞춘 노르웨이의 교도소 할덴을 둘러보는 것을 담았다. 노르웨이 공무원들은 재활과 교정을 보는 반면, 미국 교도소장은 위험을 보았다. 할덴의 직원들은 죄수들과 카드 놀이를 하는 등 교류하는 게 할덴의 이념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는 반면, 미국 교도소장은 그런 건 아티카 교도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톰은 "당신, 당신의 삶, 당신의 아이들에 대해 공유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죄수들을 도울 수 있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 아이, 내 주소, 모든 걸 알고 있어요.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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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미수로 5년 6개월 형을 받은 비욘(54세)이 바스토이 교도소의 집 앞에 서 있다. 2011년 4월 12일

만약 유토피아가 있다면 노르웨이일 거라고들 한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풍부한 복지 사회다. 최상급의 교육, 의료, 육아를 국가가 거의 전적으로 제공한다. 평등, 안전, 공산사회주의의 문화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수백 년 전부터 노르웨이의 경제는 농노나 봉건 제도가 아닌 작은 마을 단위와 지역 민주주의 자치 정부에 기반했다. 귀족 제도가 폐지된 것은 200년도 넘었고, 뚜렷한 상위 계급은 존재했던 적이 없다. 노르웨이의 기후와 위치가 이민을 제한했으며, 균일한 인구 구성 덕에 화합이 강화되었다.

처벌은 자유의 제한 그 자체이며, 누구도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엄격한 상황에서 복역해서는 안 된다는 '정상 상태의 원칙'을 도입한 노르웨이의 교도소 시스템만큼 노르웨이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범죄학지 존 프랫은 스칸디나비아 식 접근을 '처벌 예외론'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낮은 투옥률과 인도적 교도소 조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의 감옥은 소규모로, 대부분이 100명 이하를 수감한다. 불과 몇 명만 수감된 곳도 있다. 전국에 퍼져있어 죄수들은 가족과 지역 사회에서 가까운 곳에서 복역하며, 최대한 바깥과 비슷한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수감자들의 지역 사회는 복역 기간에도 의료와 교육 등 사회 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래서 노르웨이 식 수입 모델은 수감자들이 다른 시민들과 같은 복지 기구의 서비스를 받게 해준다. 이것을 끊임없는 복역이라고 한다. 복역 전과 후에 같은 지자체에 속하는 것이다. 형기도 짧아서 평균 8개월 정도이다. 2012년 미국의 평균 형기는 4년 6개월로 추정되었다. 형기를 다 채우는 사람은 거의 없고, 3분의 1을 복역하고 나면 가정 방문을 신청할 수 있고, 형기의 최대 절반까지를 교도소 밖에서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인도적 교도소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범죄율은 아주 낮고,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방문을 마치고 오슬로 행 배를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줄 노란 밴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앞니가 부러진 남성이 내 옆에 섰다.

"미국에서 왔어요? 여기가 정말 황당한 곳이라고 생각하겠네요?"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을 똥처럼 취급하면 똥이 돼요. 미국은 왜 그걸 모르죠? 이상해요. 토니 로빈스는 정말 똑똑한데 미국 사람이니까." 토니 로빈스는 해설식 광고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등의 책을 쓴 자립 구루다. 그는 불안한 듯 한숨을 쉰다.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그는 '엔지니어링'이라고 쓰여진 푸른 파카를 입고 있어서 나는 그가 장비 수리 중일 거라 생각했다.

"저요? 여기 앉아 있죠. 다른 교도소로 옮겨야 할 수도 있어서 의사를 만나러 가요. 말 알레르기가 생기고 있어요."

아, 여기서 복역 중이었구나. 몰랐다.

그가 죄수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 내겐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와 나는 두 인간이었다. 갑판원 비고와 카토를 만났을 때처럼, 우리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교류는 내가 여러 해 동안 했던 여러 교도소 인터뷰와는 큰 대조를 이루었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그는 본토로 돌아가는 길에 나와 오래된 친구처럼 잡담을 나누며, 예전에는 석유업계에서 일하며 전세계로 출장을 다녔다고 말한다. 집에 다녀올 수 있어서 가족과 지역 사회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내년에 집에 가면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어요. 교도소에서는 하늘을 보는 것과 땅의 이끼를 보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죠. 난 하늘을 봐요."

*이 글은 Baz Dreisinger가 쓴 책 'Incarceration Nations: A Journey to Justice in Prisons Around the World'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