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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안철수 그리고 권력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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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처럼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고 아직 시기가 아니라면서 혀를 차는 와중에도 정말 무리하게 서둘러서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이 역사적으로 하나 떠오른다. 오늘 불쌍하게 끌려나온(쿨럭;) 역사적 인물은 무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즉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지도자이자 소련 건국자 되겠다.

1913년 무렵 망명지 스위스에서 레닌의 상황은 안습 그 자체였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짜르 니콜라이 2세의 체제를 크게 흔들었던 1905년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짜르의 의회(두마) 개설 등의 (거짓) 개혁 약속으로 일단은 수습된다. 그러고 나서 짜르는 문제적 인물 스톨리핀을 재상으로 기용. 스톨리핀은 러시아의 자영농들을 육성해 농민들을 혁명세력으로부터 떼어 놓는 한편 혁명세력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가한다. 레닌은 자신이 이기느냐 스톨리핀이 이기느냐 하는 싸움 이라며 초조해했고, 레닌의 아내이자 스스로도 빼어난 혁명가였던 크루프스카야조차 우리 생전에 혁명의 성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는 얘기가 있을 지경. 그러다 테블릿 PC가 발견;; 아니 세상이 뒤집힌다!

스톨리핀이 유대인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하고 멍청한 짜르는 무모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에 가담하고만다. 준비 안된 러시아는 독일군에게 판판히 깨지며 레닌은 "이게 나라냐!" 아니(쿨럭;) "병사들에게는 평화를, 농민에게는 토지를, 노동자들에게는 빵을!"이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구호를 외치며 짜르 체제를 타도하자고 선동한다. 그리고 운명의 1917년 3월(러시아 구력으로는 2월) 촛불시민;; 아니 러시아 민중의 봉기로 짜르는 쫓겨난다(2월 혁명).

그러나 레닌에게 기회는 오지 않고 짜르의 뒤를 이은 것은 결국 케렌스키의 임시 정부였고 레닌의 볼셰비키당은 다수파라는 거창한 명칭과는 달리 심지어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역시 소수파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멘셰비키한테도 밀리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임시정부는 인기 없는 짜르의 싸드 배치 아니;;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결정마저 계속해서 어처구니 없게도 짜르는 쫓겨났지만 짜르가 시작한 전쟁 때문에 전선의 러시아 병사들은 계속 죽어나가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정작 레닌은 망명지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귀국도 못하고 있던 처지였다!

여기서 레닌은 그의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모두를 경악하게 하는 결정을 내린다. 레닌은 그의 조국 러시아의 적국인 독일에 손을 내밀어 독일 군부가 내어 준 봉인(封印)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귀국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

레닌 입장에서야 폐주 짜르가 시작된 쓰잘데기 없는 전쟁이 짜르 실각 후에도 계속되어 무고한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느니 적국이지만 독일 군부의 도움이라도 얻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 당장 정치판에 복귀해 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전쟁 중인 적국의 도움을 얻어 귀국하겠다는 레닌의 이런 입장은 그의 정적들에겐 레닌더러 반역자라고 팥다발 같은 비난을 퍼붓게 하기에 충분했고 지지자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레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혁명의 기운이 넘치는 러시아에 하루 바삐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고, 중간에 기착하지 않고 누가 탔는지도 꽁꽁 막은 봉인열차(독일 군부는 레닌이 독일 노동자와 병사들에게도 반전 및 혁명을 선동할까봐 두려워 함)를 타야 러시아로 보내주겠다는 독일 호엔쫄레른 가문의 굴욕적인 조건까지 수락한다. 1917년 4월 레닌은 드디어 극적으로 러시아 땅인 핀란드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한다. 짜르가 쫓겨난 러시아에선 임시정부가 권력을 인수했지만 한편에서는 노동자 병사 농민 소비에트가 공장과 병영 그리고 농촌에서 빠르게 바닥 권력을 접수해 가고 있었다(이른바 이중 권력 상황). 당대의 기성 정치인들은 상식(응?)에 따라 동맹의 약속인 싸드 배치 아니;; 전쟁(제1차 세계대전)을 계속하고 심지어 사회주의자들조차 러시아의 역사 발전 단계는 이제 봉건 짜르 체제가 겨우 무너진 단계이니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따라서 지금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러시아 실정에 맞으니(응?)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은 임시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응?)를 보내며 2중대 노릇이나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적국의 봉인열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마악 귀국한 레닌은 생뚱맞게도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외치며 당장 노동자 병사 농민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로부터 권력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닌의 이러한 상식을 파괴한 4월 테제에서의 주장은 심지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던, 러시아 사회주의혁명가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마르크스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레닌은 꿩 잡는 게 매라고 지금 러시아 민중들이 짜르를 몰아내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인기 없는 전쟁 계속하며 임시정부의 2중대 노릇하며 마르크스 교리만 되뇌일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러시아 민중의 뜻을 떠받들어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잡고 전쟁을 끝내자고 주장한 것이다.

lenin 1917

1917년 10월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연설 중인 레닌.

그리고 1917년 7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은 민중봉기를 일으켜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려고 획책한다. 그러나 이 7월 봉기는 실패하고 레닌은 귀국 3개월 만에 정계은퇴각 아니 아예 수배자가 되어 감옥에 갇힐 위험에 빠져서 이번에는 핀란드로 달아난다. 레닌과 그의 볼셰비키당의 운명도 거기까지였나 싶었다. 그런데 하늘이 레닌과 볼셰비키당을 도왔는지(응?) 극우세력의 일원인 코르닐로프 장군이 이번에는 우익 쿠데타를 일으켜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하였고 노동자들과 볼셰비키당의 도움으로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는 겨우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를 저지한다. 그러자 권력의 균형추는 급격히 볼셰비키당쪽으로 기운다. 드디어 상트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병사 농민 소비에트에서 최초로 볼셰비키당이 최대 정파가 된다. 이 기세라면 결국 정권도 볼셰비키당에 굴러떨어질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레닌은 권력이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듯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의 필연적 역사 법칙(풉)에 따라 봉건체제가 우선 자본주의 체제로 먼저 바뀐 후에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기회를 나꿔챈 직업혁명가의 적극적인 기동으로만이 정권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 군부의 봉인열차까지 얻어 타고 러시아로의 귀국을 결심하고 민중봉기까지 획책한 것에 이어 세 번째로 독배를 마시니 이번에는 무려 군사봉기를 기도한 것. 오랫동안 멘셰비키로 있으며 레닌에게 팥다발 같은 비난을 퍼붓다가 이제 마악 볼셰비키당으로 합류한 트로츠키와 손을 잡고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봉기 준비에 돌입한다.

그러나 레닌의 이런 군사봉기 획책은 정적들뿐만 아니라 볼셰비키당의 중진인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조차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들은 기명 논설을 무려 반대당인 멘셰비키의 신문인 새로운 삶에 발표해 레닌과 트로츠키의 군사봉기 획책을 비판한다. 이건 사실 볼셰비키당 입장에서는 심각한 배반이었던 게 군사봉기하겠다는 것을 반대편인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다 폭로해 버린 적전 분열을 한 셈-_-; 그래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그것이 당도 위하고 레닌에게도 옳은 길이라고 믿었던 것. 그러나 레닌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와 함께 군사봉기를 강행하고 결국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한다(1917년 11월, 러시아 구력에 따라 10월 혁명).

돌이켜 보면 적국인 독일 군부의 봉인열차를 이용한 귀국,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마르크스의 전통 교의를 깡그리 무시한 셈인 4월 테제, 7월 민중 봉기와 10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레닌은 모든 상식과 당대 정치권 고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또렷한 권력의지만. 가지고 줄달음질쳐 정권을 잡은 것.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레닌의 그런 정권 장악은 빛과 어둠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창건했고 극우 세력인 백군과의 내전에서도 이겨 소련을 지켜냈으나(E.H. Carr는 레닌의 혁명가로서의 면모보다는 국가 건설자로서의 면모에 더 주목한다), 반면에 비밀 경찰로 유지되는 일당 독재국가의 공산주의 지옥도를 만들어낸 것도 레닌이었다. 당장 레닌은 자신이 야당인 시절 줄기차게 소집을 요구해 왔던 제헌의회(CA)선거에서 자신의 볼셰비키당과 연정 파트너인 사회혁명당 좌파가 소수를 점하자 레닌은 가차없이 제헌의회를 해산해 버린다. 즉 레닌의 사전에 양보 따위는 없고 오로지 활활 타오르는 권력의지만이 있었을 뿐이다.

레닌의 사후 그의 뒤를 레닌이 유언장에서 비판했던 끔찍한 독재자 스탈린이 잇고 베를린장벽 붕괴 후 동구 공산국가들이 무너진 다음 소련마저 망하자 실은 10월혁명 때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입장이 옳았고 10월 혁명을 비판했던 카우츠키 같은 사회주의자의 입장이 다시금 부각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레닌의 사례가 지금, 여기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의 경우에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다면, 권력이란 결코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상식에 따르고 당내 중진들과 화합하며(응?) 겸손히 처신한 이에게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굴러 떨어지지 않았고(그랬다면 인기 없는 짜르의 전쟁을 짜르 없이도 계속했던 임시정부 수반 케렌스키나 그런 케렌스키의 2중대 되기를 자처했던,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던 멘셰비키, 무장봉기에 반대했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역사의 각주에나 남지 않고 역사의 주역이 되었을 것이다), 팥다발 같은 비난을 마다 않고 강렬한 권력의지로 돌파해낸 레닌에게 돌아갔다. 오늘 안철수는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함으로써 자신이 철수나 하고 양보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강렬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인임을 국민의당 창당과 대선 완주에 이어 다시금 천명하였다.

안철수가 더불어민주당 탈당에 못지 않은 고단한 코스가 될 것이 뻔한 이 당 대표 출마라는 가시밭길을 레닌 못지 않게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레닌과는 달리 권력욕에 사로잡힌 괴물이 아니라 당신이 오늘 밝힌 국민의당을 지켜 국민을 위해 다당제를 정착시킨다는 목적을 과연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끝.

* 이 글은 필자의 트위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