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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누가 나의 옷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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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월 16일)은 부활절이다. 이제야 비로소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가 침몰한 지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며, 세월호 참사를 감히 입에 올리기도 송구스럽지만, 부활절을 맞아, 오래 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책 [예수의 생애]에서 읽은 한 장면이 문득 떠올라서 여기에 소개하여 본다. 엔도 슈사쿠의 예수님 및 부활절에 대한 관점을 기독교 신자 분들께서 불경스럽게 여기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부디 세월호 미수습자 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가족 분들 품에 돌아 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엔도 슈사쿠가 [예수의 생애]에서 그린 예수님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나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 나게 하고 소경을 눈 뜨게 하는 기적을 베푸는 수퍼 히어로가 아니었다. 비참한 세상에 비루한 인간들만 가득한 가운데 그저 훌쩍 큰 키에 마른 몸에 슬픈 눈을 한 목수 출신 전도자였을 뿐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이민족 로마제국의 압제와 그 주구인 헤롯왕의 탄압 속에 모질게 삶을 이어가던 유대 대중들은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말에 환호하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소망을 투영하며 세상의 악을 절멸시키고 그들을 천년 왕국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갈망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당신께서 가시는 어디에든지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병들고 아프고 지친 이들을 그저 달래주고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셨을 뿐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하면 몰려드는 병들고 지치고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선사하시고 그들이 증오해마지 않은 적들을 물리쳐주실 메시아에게 해라도 가할까봐 결사적으로 그들의 접촉을 막았다. 그럴수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고통의 지옥도를 겪던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몸부림을 쳤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비규환이 된 날에 예수님은 당신의 옷자락을 미세하게 잡았던 한 여인의 작은 손길을 느끼셨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많은 헌금을 해서 회계인 유다를 통할 수도 없었고(그녀는 무척 가난했을 것이다), 다른 힘센 남정네들처럼 예수님을 잡고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애원할 힘도 없는 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는 고통과 슬픔이 꾹꾹 눌려 담겨져 있었을 터였다. 그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그러기에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찼던 그 여인은 그래도 자신의 손길이 혹시라도 메시아께 폐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하지만 이제 메시아께 엎드려서 호소하는 것 외에는 정말 이 세상 어디에도 기댈 것이 없었기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의 끄트머리 한 자락을 잡아 보았다.

어쩌면 그 여인의 집엔 열이 펄펄 끓는 고통 속에 의식을 잃은 딸이 있었을 수도 아니 이제 생사도 알지 못하고 온가족과 친지들의 마음만 애타게 하는 실종된 아들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저 예수님의 옷 끝자락에 조심스레 손을 대어 보았다는 것으로 그녀는 만족했으리라. 그냥 그렇게라도 해 보았다는 것을 한 가닥 위안으로 삼아서, 이제 언제 돌아올지 모를 자신의 딸이나 아들을 다시 볼 기대를 안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께선 알아차리셨다. 누가 당신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잠시 아주 작고 연약한 손길로 잡았음을 아셨다. 그 손길에 담긴 그 여인의 삶을 가득채웠을 고통과 슬픔을,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떨리는 움직임에서 아셨던 모양이다. 당신을 잡아 팔자를 고치고 세상의 악을 절멸하고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게 하는 기적을 바랐던 억세고 거친 손길들이 난무하고, 힘센 제자들이 겨우겨우 그들의 접근을 막고 있던 아비규환, 아수라장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어찌된 일인지 그 비참한 여인의 손길을 알아차리셨다.

예수님께서는 "여기 누가 나의 옷을 잡았다"면서 그를 '보호'하겠다는 제자들을 물리치셨다. 당신에게 헌금해서 이런저런 이문을 보겠다는 부자들을 쫓으시고는, 자신이 큰 일이나 벌인 것 아닌가 싶어 이제는 겁에 질려 있었을지도 모를 그 여인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은 그저 그 여인의 손을 가만히 잡으신 채로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시지 않으셨을까?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조용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들어 주시지 않았을까?

곧 이 예수님께서, 끝내 자신에게서 메시아만 보았던 이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세상을 떠나셨다가 다시 그런 슬프고 지친 영혼들의 마음 속에서 되살아나셨다는(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부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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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레 비다(1823~1895)의 예수 생애 동판화 연작 중 한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잡으려는 모습을 묘사한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