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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지고 나서야 비난할 대상이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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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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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아카데미 최우수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보스턴글로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보스턴 지역 카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에 대한 취재기다.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카톨릭을 신봉하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심층취재 부서인 스포트라이트팀이 받았을 압력과 회유가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영화는 그에 맞서는 저널리즘의 승리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 팀 구성원들이 어떻게 지난 30년간 거대한 기득권의 추악함이 감춰질 수 있었던가에 대해 자책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는 제보를 묵살했다. 아예 믿을 수 없어서 진실을 외면했던 이도 있다. 그들에게 편집국장 마티가 다독거린다. "우리는 쉽게 잊곤 하죠. 어둠 속에서 자주 넘어진다는 걸. 불이 켜지고 나서야 비난할 대상이 너무 많이 보이는 법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벌어진 일도 이렇게 묻혀버리지 않을지 걱정이다. 누군가를 실컷 비난하고 난 후 모든 것이 잊힐까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이 사태로 누군가는 득을 보고 같은 일이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하고 두렵다는 이유로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에는 눈을 감은 채 말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어떻게 소수에 휘둘렸는지, 그 몇몇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이해와 과신으로 국정을 주물렀는지, 편의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기득권 집단과 거래를 했는지에 대해 외면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주인들이 한 눈을 파는 순간 민주주의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번에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할 것은 빤한 일이다.

끝내 검찰 수사의 칼날이나 여론의 펜 끝이야 피할지도 모르지만, 이번 일의 조역들도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이 앞으로도 똑같은 처신을 한다면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얻을 교훈은 없다. 조역은 모두 세 부류다. 우선 대기업들은 온전히 이번 일의 피해자라고만 할 수 있을까? 서슬 퍼런 권력이 요구하는데 버틸 수 있었겠느냐는 항변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가운데 단 한 곳도 비선 실세와 청와대의 압력에 맞선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구린 데가 많은 대기업들로서는 이런 방식의 거래가 한결 더 편하고 경제적이라는 계산이 앞섰을 수도 있다. 선뜻 권력 내부에 천문학적 돈을 안기는 이들이 국민 복지 증대를 위한 사소한 증세에도 한사코 반대한다는 점을 납득하기는 정말 어렵다.

우연찮게도 이번 사태 초기부터 거론돼온 두 명은 낯익은 지식인 혹은 전문가다. 둘 다 교수 재직 시절 방송 인터뷰나 칼럼 요청을 위해 접촉했던 이들이다. 그 시절 이 둘은 얼마나 자부심이 가득 차 있던지, 간혹 오만해보일 정도였다. 권력을 향하는 방편으로 미디어를 활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둘은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순실 모녀와 그 주변 인물들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무속인이나 사이비 종교인, 권력 브로커들이라고 할 이들의 심부름꾼을 자청했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젊은 세대를 가르쳤던 그들이 정작 이번 사태에서 '부역자' 소리나 듣는 것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합리화 하고 있을까? 두 번째 조역은 지식인 혹은 전문가 집단이다.

마지막으로 국민들 또한 최순실 모녀 국정 농단 사태의 공동 종범이라는 혐의를 피할 길이 없다. 엄중한 검증 없이 감정에 치우쳐 나라의 최고 지도자나 군 통수권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당수 국민은 최순실 모녀를 포함한 소수를 가해자로, 대통령을 호가호위(狐假虎威)의 피해자로만 여긴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당시의 인식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선 당시처럼 섣부른 동정론도 횡행하고 있다. 한 나라를 사우나 부녀회 모임으로 전락시켰다는 이유로, 토목공사 업체로 격하시켰던 이전 정부나 지도자가 나았다는 희한한 회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래서야 앞으로 좋은 권력이 들어선다거나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불이 켜지면 소수에게 흥분해서 손가락질 하다가, 다시 불이 꺼지면 넘어지는 일을 반복해야만 할 것인가?

* 이 글은 제민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